▲ 김백산 지구촌평화연구소 대표
'9.19' 평양 남북 정상회담은 역사에 기록될만한 소득이 있었는가. 물론 회담 이후 대부분의 언론은 정상회담의 합의가 남북의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하긴 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회담의 핵심의제인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 대해 별다른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수행단은 회담 기간 동안 북측의 파격적인 환대와 감성적인 이벤트들에 크게 만족하는 듯 했고 언론도 이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지만 그 이면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구체적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냉철한 접근은 엿보이지 않았다. 사회일각에서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선 회담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평양정상회담에서도 북한에게 그들이 살길이 무엇인지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북한이 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치열하게 설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문제의 본질은 회피하고 부차적인 문제에만 매달려 이목을 집중시켰을 뿐이다. 협상에서 우리 측이 전술적 오류를 자초한 형국이 되고만 셈이다.
회담 시작 전부터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에 대해 우리가 주요 당사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에 관한 한 처음부터 회담을 통해 얻을게 별로 없다고 판단하고 그 빈자리를 감성적 이벤트로 메우려 했던 것 아닌가. 그렇게 의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남북 공조만으로 북핵 해결 불가능
더욱 심각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의 선후 관계를 잘못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북핵 문제도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문재인 정부가 너무나 나이브한 감상적 민족주의에 빠져 국제사회의 보편적 지향과 배치되는 길을 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평양회담 이후 북한의 성의 있는 태도에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하거나 제재 완화가 북한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전도된 논리까지 사용하고 있는 문대통령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북한의 비핵화는 한미동맹을 한 개의 축으로서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한국이 북한과 민족 공조라는 명분에 집착해서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려 한다면 결국 파국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북핵은 인류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남북 공조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세계사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민족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생각은 일면 타당한 것처럼 여겨질 수는 있다. 하지만 북한이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그건 의미도 없고 실현될 수도 없는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
한반도 미래 국가의 비전을 제시해야
두 정상이 진지한 논의를 거쳐 가장 먼저 합의했어야 하는 것은, 남과 북이 평화롭고 번영된 한반도의 실현을 위해 어떤 나라를 건설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국제사회에 천명하는 일이었다. 적어도 문 대통령만이라도 그런 비전을 명확히 설정하고 제시해야 했다. 그럼에도 문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같고 평소에도 그런 언급은 거의 없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북핵 문제도 지정학적으로 이러한 두 강대국의 패권 경쟁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언젠가는 선택을 강요 받을 것이다. 어느 쪽에 줄을 서는 것이 한민족의 미래 운명에 긍정적인가를 결정해야 할 시기가 머지않아 올지 모른다.
중국에 편승은 역사발전 방향에 위배
H.헌팅톤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유교 문명의 유산을 중국과 공유하고 있는 한국이 가까운 미래에 미국을 등지고 중국에 편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이러한 예측이 현실화되리라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친중적 행보로 미루어 보면 한미동맹의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이 중국에 편승하는 것은 세계사의 발전과 인류 보편적 가치 실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개인적 확신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강고한 권위주의적 통치체제를 지속하고 있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도외시하는 체제인 것이다. 러시아, 북한 등 유라시아 동북 지역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체제 특성이다. 세계사적 발전이 유라시아 지역에서 유난히 더딘 이유도 20세기를 휩쓸었던 소비에트 공산주의 체제의 유산이 잔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인류사적 과제는 사회주의 유산을 청산하고 인류 보편가치가 실현되는 평화롭고 번영된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러시아, 북한 등 비민주적 국가들의 권위주의 통치체제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 이와 같은 주변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문재인 대통령이 안고 있는 가장 무거운 국정 과제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과 개혁으로 나가도록 이끄는 일이다.
코리안 드림은 한민족의 새로운 운명 창조의 비전
필자는 문재인 정부가 대북협상에서 오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협상의 최종 목표와 비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북한 핵 문제의 해결을 통한 한반도의 번영이 어떤 비전과 가치를 토대로 하여 어떤 나라를 만들기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인류 역사의 발전 방향과 보편적 가치의 실현이란 명제에 부합해야 한다.
협상과정에서 북한의 전략을 오판하고 그것에 편승하는 과오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진정으로 북한이 살길은 내부적 개혁과 함께 핵무기를 폐기하고 국제사회로 나오는 것임을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한다. 지금처럼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 아래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함으로써 주민들이 계속 빈곤의 고통을 견디며 살게 할 것인지 아니면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가 충만한 시장경제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역동적인 역사 발전에 기여하는 나라로 도약할 것인지를 선택하게 해야 한다.
결론은 간명하다. 위와 같은 원칙을 충실히 지킬 때 비로소 정상회담을 통한 북핵 폐기 등 남북관계는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민족 모두가 평화롭고 번영된 삶을 영위하면서 세계사의 발전에 부응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꿈꾸는 코리안드림이다. 코리안드림의 실현으로 한민족은 새로운 운명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