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키워드#한반도] ‘두렵고 설렌’ 오늘에서 ‘즐겁고 설레는’ 내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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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한반도] ‘두렵고 설렌’ 오늘에서 ‘즐겁고 설레는’ 내일로!

#남북정상회담 #평화 #통일
기사입력 2018.05.0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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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_2.jpg▲ 허경은 편집부장
“역사적인 만남이다”, “감격스럽다”, “언빌리버블!”...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의 진행과정에서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을 지켜본 해외 언론들의 반응이다. 그만큼 전 세계인이 크게 놀랄 정도의 역사적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한국 언론은 이에 대해 주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일부 외신은 ‘세계 역사의 대전환’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한반도 이슈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늠케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남북은 한반도 이슈의 세계적 공론화에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상황이다. 이제는 다소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미래를 내다볼 필요가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문득 얼마 전 타계한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린다 브라운’(Linda Brown, 1942-2018)을 동시에 떠올렸다. 지난 3월 25일 향년 76세로 별세한 린다 브라운은 미국의 인종차별 철폐운동을 이끈 인물로, 이른바 ‘브라운 판결’(1954년 5월 17일)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분리하되 평등’이란 모순에 빠졌던 미국의 과거

미국은 자유와 평등을 똑같이 중시하는 나라지만 과거엔 유색인종 분리정책을 합법적으로 시행한 모순적 사회이기도 했다. 1890년 ‘호머 플레시’란 흑백 혼혈 남성이 열차 탑승시 흑백 객실분리법을 무시하고 백인 전용객실 이용을 고집하다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피고 플레시 측 변호인단은 이 사건이 수정헌법 14조(평등법) 위반이라고 주장했으나 연방대법원은 '분리는 하되 평등(separate but equal)'하면 된다며 분리정책에 합헌 판결(1896년 5월 18일)을 내렸다.

그로부터 두 세대 가까이 이어진 이 분리정책은 1950년대 초에 이르러 다시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를 두고 먼 흑인학교를 다녀야만 했던 린다 브라운의 아버지가 이를 거부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소송에 연방대법원은 전원일치로 ‘분리는 하되 평등’은 위헌이란 판결
을 내렸다. 하나의 정책을 두고 58년만에 합헌을 위헌으로 뒤집은 기념비적 판결이었다.

앞서 있었던 “분리하되 평등하면 된다”고 결정했던 ‘플레시 판결’은 ‘미국 사법 역사상 최악의 판결’로 평가되고 있다. 오는 5월 17, 18일은 나란히 이어지는 브라운·플레시 판결일이다. 미국은 스스로 빠져있던 모순을 반성하고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취지로 이날을 기념할 것이다. 

21 (1) Linda Brown.jpeg▲ 린다 브라운(Linda Brown, 1942-2018)
 
‘분리하되 평화’를 지향하겠다는 한국의 오늘?

20세기 초중반에 미국에서 있었던 두 개의 상반된 인권 관련 판결을 길게 인용한 이유는, 그것들이 21세기의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 무엇인가를 성찰해 보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말이나 상황에는 과연 사회적 모순이 없을까.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지도자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다양하게 해석되기 마련이다. 정상회담 이전 발언이긴 하지만 지난 3월 21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보도를 통해 이를 접한 순간 나는 잠시 당황했다. 대통령 발언의 의미가 모호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통일을 하지 말자는 뜻인가, 통일 없이 
평화로울 수 있다는 말인가. 정상회담이 끝난 지금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혹시 우리 사회는 '분리하되 평화(separate but peaceful)'라는 모순에 빠져있지는 않은가.

평화는 ‘하나’로 통합될 때 비로소 가능

남북정상회담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왔다. ‘통일과 민족의 번영 앞당길 것’, ‘북과 남이 자유롭게 이 길(군사분계선)을 오갈 수 있게 하고, 하나의 핏줄·언어·역사·문화를 가진 북과 남이 본래대로 하나가 되어 번영 누리게 될 것.’(김정은 발표문)

어휘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모든 용어가 충분히 이해되고 반길만한 것들이다. 그러나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우리 납북자, 억류 미국인, 납치 일본인, 중국에서 북송되는 탈북자, 김정남 암살 등 북한이 억압통치 체제로 자행해 온 갖가지 인권 탄압의 전향적 해결방안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것이 이번 회담의 큰 아쉬움이다.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는 더 이상 해결과제가 아닌가, 북한 체제의 변화없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 수 있는 것만으로 진정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가’... 한반도에서 모든 인간이 자유, 인권, 평등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질문들을 던져본다.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두렵고 설레는 마음”이라고 소감을 전
했다. 그렇다. 지금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한 정확한 표현이었다. 여전히 많은 난제가 산적해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함께 살든 따로 살든’이 아닌 ‘하나가 되어야만’ 외신들의 표현대로 모두가 기대하는 ‘세계 역사의 대전환’을 맞을 것이다. 이 과정을 헤쳐가는 길에서 우리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모순에서 어떻게 헤어나올지를 치열하게 모색해야 한다. 훗날 우리의 후손이 지금을 ‘우리 역사상 최선의 시기’라고 망설임 없이 기록할 수 있도록 충분히 고민하면서 ‘두렵고 설렌’ 오늘을 ‘즐겁고 설레는 내일’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079.jpg▲ 4월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평화의집 앞에서 판문점선언 공동발표를 하고 있다.(출처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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