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현주 부산가야금병창보존회] “한반도에서 연변까지 음악으로 '융합'하는 것이 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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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부산가야금병창보존회] “한반도에서 연변까지 음악으로 '융합'하는 것이 나의 꿈"

코리안드리머
기사입력 2018.04.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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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jpg김현주 부산가야금병창보존회 이사장
 
가야금의 평평한 바닥은 땅을, 둥근 곡선으로 휘어진 상판은 하늘을, 12개의 줄은 열두 달을 의미한다. 이처럼 우주의 원리와 철학이 담겨 있다는 가야금은 가장 한국적인 악기로도 손꼽힌다. 

“가야금을 켤 때 들리는 명주실의 오묘한 소리는 한국의 4계절도 느끼게 해줍니다. 봄에는 꽃잎이 탕탕 튀는 소리, 여름에는 또르르 물이 흐르는 소리, 가을에는 청아하면서도 깊은 소리, 겨울에는 사각사각 눈이 쌓이는 소리…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담고 있지 않나요?”

김현주 부산가야금병창보존회 이사장은 마치 눈 앞에 그림이 그려지듯, 그리고 귓가에 그 소리가 들리듯 가야금의 매력을 말로서 묘사했다. 

김 이사장은 2008년부터 10년 째 중국 연변을 방문한다. 이유는 중국동포(조선족)들에게 가야금병창을 전수하고, 나아가 그들로 하여금 국악이 사라진 북한에도 우리의 소리가 흘러 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인터뷰를 하던 날(4월 10일)도 연변 출국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김 이사장은 “지금은 연변을 오가지만 언젠가는 평양을 오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글 허경은


가야금으로 통일염원과 애국을 연주하다

가야금병창으로 어떻게 한국 역사와 통일을 말할 수 있을까. 김 이사장은 희로애락의 개념을 우리 역사의 흐름에 접목해 표현하는 공연을 기획했다. 공연명은 ‘향수’다. 

“태평성대였던 조선시대는 ‘희(喜)’,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된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애끓는 마음은 ‘로(怒)’, 동족간 총부리를 겨눴던 6·25전쟁은 ‘애(哀)’, 평화통일이 실현된 한반도는 ‘락(樂)’입니다.”

김 이사장이 기획한 공연 ‘향수’는 주로 6·25참전용사와 독립운동가 후손, 재향군인회 분들을 초대해 매년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부산국립국악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올해에는 6월 23일에 공연한다.

“제가 직접 ‘부산타령’을 가야금병창으로 만든 곡을 비롯해 부채춤, 가무악 등이 화려하게 접목돼 있고, 무대 뒤로는 이산가족 상봉, 위안부의 절규 등 각 주제에 맞는 영상도 깔리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이해하며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
 
김 이사장의 아버지와 오빠는 각각 경찰·군인으로 근무하다 정년 퇴임했다. 김 이사장이 한국 역사와 통일·애국 등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와 같은 가족 배경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김 이사장은 7세때부터 한국무용과 가야금병창을 배우기 시작해서 평생을 국악인으로 살아왔다. 따라서 그의 정신세계에는 한국의 미에 대한 애정과 평화열망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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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위해 중국동포(조선족)와 소통 확대해야 

김 이사장의 각종 대회 수상경력은 물론 공연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가야금병창으로는 문화관광부 장관상(2002), 유네스코 총장상(2005), 아리랑 민족문화대상(2016) 등을 수상했고, 한국을 넘어 일본, 중국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연변대학·연변가무단·연변인민방송국과의 협연 등 연변에서의 활동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연변과 인연이 된 것은 우연히 북경 여행을 하다가 만난 조선족 가이드의 마지막 말 때문입니다. 모든 여행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한국에 돌아가시면 조선족에 대해 좋은 말씀을 전해달라고, 우리가 모두 범죄를 저지르거나 나쁜 짓만 하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우리는 한국을 사랑하는데 한국인들이 우리에 대한 오해가 커 마음이 아프다고…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 조선족 이주 역사를 더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의 후손이거나 강제이주의 아픔을 지닌 우리 한민족 아닙니까.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버리지 않고 지금도 한복을 입고 김치를 담가 먹으며 우리문화를 이어오고 있는 모습에 저절로 숙연해졌습니다.”

김 이사장은 그 후부터 매년 연변을 찾기 시작했다. 무려 10년째 그 발길을 이어오다 점차 횟수가 잦아져 올해부터는 매달 일주일씩 방문하고 있다. 그는 조선족들이 이어온 한국 문화 중 변질된 국악, 특히 가야금과 관련해 강연과 공연을 이어가며 전통을 새롭게 전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북한동포들에게 국악 전파해 한민족 정서 공유해야 

북한에서는 국악이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국악의 현실은 왕래가 잦은 연변 조선족들을 통해 확인이 가능한데, 대부분의 악기가 개량되었으며 선율도 경쾌하고 진취적이다. 국악이 북한식 음악으로 변질된 것이다. 가야금은 전통적으로 오동나무로 만들어지고 명주실 현이 12개이지만 북한의 개량 가야금은 25현이고, 대금도 대나무가 아닌 금속으로 만들어 사용한다.

“연변가무단에서 개량악기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판소리가 뭔지도 모르더군요. 음악은 그 나라의 문화, 말, 자연을 대변합니다. 국악은 우리 민족이 공유해 온 희로애락과 한의 정서를 담은 것으로 한국 그 자체인 것입니다.”

김 이사장은 조선족에게라도 전통 국악을 제대로 가르친다면 이들을 통해서 언젠가는 평양에도 우리의 전통 소리와 악기가 전달될 것이라 기대하며 매번 개인경비를 들여 연변을 오가고, 특히 우연한 기회에 홍미선 연길시 문화관 관장과 인연이 닿아 12현 가야금 30대도 연길시 문화관에 기증하게 됐다. 김 이사장의 이와 같은 '연변활동' 설명을 통해 조국분단으로 갈라진 민족이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간절한 소망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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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모습의 가야금병창으로 평화의 꽃 피웠으면..."

김 이사장은 가야금병창을 한 송이 꽃에 비유했다. 

“한복을 곱게 입고 앉아 가야금을 켜는 모습을 보세요. 한 송이 꽃 같지 않습니까? 북한 음악이 많이 달라졌다 해도 한복의 화려함, 우리말의 익숙함, 내재된 정서의 공감 등이 있기에 북한 사람들에게도 금새 적응이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평양에 가서 우리 음악을 들려주고 싶고, 훗날 통일이 되었을 때 우리 음악에 낯섦을 느끼지 않도록 지금은 연변 조선족들과의 교류를 꾸준히 이어갈 계획입니다.” 

국악인이라고 해서 오로지 전통성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김 이사장은 ‘크로스오버 음악’(서로 이질적인 다른 장르의 요소가 결합해 만들어진 음악)도 추구한다. 직접 기획한 공연 ‘향수’에서도 중간에 대중가요가 삽입되기도 하고 가야금병창과 관현악을 접목한 부분도 등장한다. 시대에 맞는 음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김 이사장은 북한과 한국 음악이 접목된 또 하나의 새로운 장르의 탄생도 기대해 볼만하다고 했다. 심리학적으로 둘 이상의 요소가 합쳐져 하나의 통일된 감각을 일으키는 일을 ‘융합’이라고 한다. 그의 꿈은 한마디로 융합의 성취였다.

"제 꿈은 부산에서 평양까지, 그리고 평양에서 연변까지 한반도를 음악으로 관통하는 것입니다. 부산은 임진왜란 격전지였고,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신시가지가 조성된 곳이었으며, 6·25전쟁 당시 피난수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산에서부터 출발해 음악으로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함께 꽃피울 미래를 하루빨리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길을 여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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