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고경일 풍자만화가] “통일의 문도 결국은 시민의 힘으로 열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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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일 풍자만화가] “통일의 문도 결국은 시민의 힘으로 열릴 것"

코리안드리머
기사입력 2018.01.1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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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s.jpg▲ 고경일 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 풍자만화가
 
이제는 웹툰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제작이 점차 늘고 있고, 또 그런 작품들은 시청률과 수익 면에서 대체로 성공한다. 웹툰을 원작으로 하여 2014년에 제작, 방영된 드라마 ‘미생’은 세대와 남녀를 모두 아우르며 큰 사랑을 받았고 그 해 케이블TV 방송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만화 한 컷의 힘은 무엇일까? 풍자만화가이기도 한 고경일 상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그림’과 ‘스토리텔링’의 접목이라고 해석했다. 그림이 있어 소설과 다르고 스토리텔링이 있어 미술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림은 때로 난해하고 문학은 인터넷의 발전으로 점차 소외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화는 복잡한 서사구조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전달력을 높이고 디지털문화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면서 인터넷·SNS 등을 통해 빠르게 공유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불특정다수와 실시간으로 무엇이든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만화와 같은 장르들은 더욱 불같이 번져나갈 것입니다.”

고 교수는 저명한 만화가들과 함께 ‘통일’을 주제로 하는 국제 공모전을 열기 위해 크라우드펀딩 등 다각적인 준비도 하고 있다며 “통일이 중차대한 과제이지만 어려운 일이 아니며 그 과정이 고난스럽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만화로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만화가들의 노력과 과정에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터뷰·글 허경은


02-s.jpg▲ 고경일 ‘낙타와 바늘 귀(Camel and ear of a needle, 2017)’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려울지라도...

흔히 매우 달성하기 어려운 일에 대해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기 보다 힘든 일’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이 비유는 주로 비관적인 결말보다는 성공적인 결말을 이를 때 쓰인다. 고 교수가 그린 한 컷 만화 ‘낙타와 바늘 귀(Camel and ear of a needle, 2017)’를 보면 통일의 어려움에 대한 그의 생각이 쉽게 이해된다.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기란 당연히 어렵죠. 정치적 이념에 의한 대립도 있고 이익집단 간의 갈등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림에서 바늘귀를 통과하는 전면에 시민들을 그려 넣었습니다. 우리가 촛불집회를 통해서도 경험했듯이 통일도 결국은 정치·외교가 아닌 시민의 힘이 발휘되었을 때 실현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우리의 소원(Our Wishes, 2017)’은 수많은 시민들의 모임으로 구성된 ‘통일’이란 글자이다. 마치 군중이 문자 등을 연출해내는 일종의 매스게임(Mass Game)을 연상케 한다. 이 또한 통일이 시민의 결집된 힘으로 성취될 수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의 두 작품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더불어 평화’전(통일부·서울시 주최, 2017.12.05~2018.02.04)에 전시돼 있다.   

03-s.jpg▲ 고경일 ‘우리의 소원(Our Wishes, 2017)’
 
일본에서 배운 만화로 일본의 역사적 과오 비판

고 교수의 만화 인생은 원조 만화대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교토세이카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하던 중이었습니다. 98년경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일본의 우익 단체에서 새 역사교과서를 준비 중이었죠. 한번은 그들이 일본 공중파 TV에 나와 일본군 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았고, 조선인 여성들 스스로 자발적인 성매매를 한 것이었으며, 재일조선인들도 자신의 나라(한국)로 되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 때 한일간에 빚어졌던 사건들을 하나하나 짚어내고, 한반도 분단이 너희(일본)들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풍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전시는 일본 사회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아사히, 마이니치 등과도 인터뷰를 하게 됐다. 물론 인터뷰 기사가 나간 이후, 그는 수많은 협박에 시달렸다.
 
“당시엔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이니, 팩스를 통한 항의와 협박장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교수실에 들어갈 때면 문을 열 때마다 바닥에 쏟아진 팩스 용지가 눈 쓸리 듯 쌓여 있었죠. 그 때 깨달았습니다. 자민족 중심주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주변 강대국들은 한반도의 통일을 과연 응원하고 있는지···.”    
 
하나의 한국을 그리워하는 재일 동포들

고 교수는 어느 날 우연히 버스 안에서 마주친 조선인 여학생을 보며 우리의 분단 현실과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학생이 서 있었는데 명찰에 ‘3학년 2반 김복자’라는 한글이 새겨져 있었죠. 그 모습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조선 사람)이 지금도 이렇게 일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조선인에 대한 편견은 지금도 크지만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문제도 아주 많습니다. 조선학교 학생들 중 50% 이상은 한국여권을 갖고 있고, 일부는 일본에 귀화해 일본여권을 갖고 있으며, 귀화하지 않은 채 국적이 조선(일제 강점기 명칭)으로 표기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 북한여권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조총련에서 만든 학교라 과거엔 교실마다 김일성·김정일 사진이 걸려있었지만, 지금은 그 사진도 떼어버린 곳이 많고 대한민국 국적자들이 절반이상 다니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인 사회에 대해 다시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 교수는 막연한 거부감으로 그들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같은 한민족으로서 그들의 사연과 아픔을 이해하고, 협력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일교포의 민간단체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 양분되어 있다. 과거엔 조총련의 규모가 더 컸으나 현재는 민단이 더 크다. 그러나 조총련계에서 세운 70여 개의 조선학교가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반면 민단 운영의 민족학교는 4개에 불과하다. 모국의 말과 글로 문화와 풍속을 가르치는 조총련의 조선학교에서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싶어 하는 재일동포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TV프로그램에도 출연 중인 정대세 전 축구선수는 재일교포 출신으로 조선학교를 나온 후 북한 국가대표 선수로도 활약한 바 있으나 국적은 한국이다. 그가 과거 어느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은 나에게 분단되지 않은 통일된 나라”라고 말한 바 있다. 재외동포들은 남북을 구분하지 않는데 정작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시각은 어떤지 돌이켜 볼 대목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화강국'을 꿈꾼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재일조선인에게 북쪽이냐 남쪽이냐, 하나의 이념을 선택하라고 요구해 왔던 건 아닐까. 고 교수는 하루빨리 이념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사람보다 우선일 순 없습니다. 일본에서 절 가르쳐주신 두 분의 교수님이 계시는데, 한 분은 우파적 언론인 ‘요미우리신문’에, 다른 한 분은 좌파적 언론인 ‘아사히신문’에 연고를 두고 계신 분입니다. 우파 쪽 교수님은 평소엔 젠틀한테 술만 마시면 ‘일본천황 만세’를 외치고, 좌파 쪽 교수님은 한국 유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식민지 문제에 대해 사과하셨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좌파는 옳고 우파는 그르다고 생각하곤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우파 교수님은 한국에 올 때마다 한국 사람들과 함께 소주를 마시고 김치를 사오며 친분을 맺고, 좌파 교수님은 사적 이익을 위해 사람을 만나고 일 또한 독재적 스타일로 처리해 실망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제가 느낀 것은 결국 이념 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통일을 준비할 때도 이념으로 편가르기를 하지 말고 사람이 만들어 갈 사람의 문제로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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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교수는 통일을 한마디로 “똥이다”라고 비유했다. 평소 사회 문제를 풍자적으로 풀어내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던 풍자만화가다운 발상이다.
 
“사람들은 똥을 더럽고 쓸모 없는 것이라 생각하죠. 요즘 통일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먹는 게 있으면 배출되는 게 있어야 하고, 그것이 땅에 스며들면 비료가 되어 지구를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우리의 대대손손 자손들이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금 당장은 더럽고 힘든 길일지라도 통일을 이뤄 내 거름이라도 남겨놓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통일 후 한반도의 모습을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에 빗대어 상상했다. 그의 상상대로, 김구 선생의 바람대로, 통일 한반도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화 강국이 되어 이웃 국가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시민들의 관심과 노력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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