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문화적 삶] 1940년 봄의 ‘덩케르크’, 1950년 겨울의 ‘흥남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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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삶] 1940년 봄의 ‘덩케르크’, 1950년 겨울의 ‘흥남부두

기사입력 2017.08.0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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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로 승리를 이끈 ‘덩케르크’와 ‘흥남’ 철수
군인을 구출한 시민, 시민을 지킨 군인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위대한 선택

제2차세계대전 당시의 ‘덩케르크 철수 작전’(1940년 5월 28일)을 그린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Dunkirk, 2017)가 화제다. “전쟁이 아닌 생존에 관한 영화”라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전투씬보다 탈출을 기다리는 군인들의 감정씬을 주로 담고 있다.

덩케르크 철수:
민간의 헌신적 도움으로 30만 병력 구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독일군에게 밀려 프랑스 덩케르크 지역의 북부해안에 고립된 영국·프랑스 연합군 병력 30여만 명을 영국으로 철수시킨 작전이다. 이 작전이 역사적인 이유는 생업을 포기한 채 최악의 여건을 무릅쓰고 해상 전선에 뛰어든 시민들의 희생적인 도움으로 대규모의 병력이 전멸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때문이다.

044.jpg▲ 영화 '덩케르크' 스틸컷
 
패퇴하는 연합군 측에 수많은 병력을 수송할 수 있는 대형 군함은 태부족이었다. 더구나 선체가 큰 군함의 경우 독일 공군의 폭격 표적이 될 수밖에 없는데다 조수간만의 차마저 커서 해안 정박과 출항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철수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해안선까지 접근이 가능한 소형 배들이 필요했다. 그때 동원된 것이 바로 민간 어선이었다. 당시 군 수송선을 비롯해 민간 어선, 요트 등 배 887척으로 338,226명의 병력이 영국 땅에 상륙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라도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한 사람은 영화 덩케르크를 보고나서 자연스럽게 ‘흥남 철수’ 작전을 떠올렸을 것이다.

흥남철수작전이 수행된 날은1950년 12월 23일이다. 북풍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이었다. 혹한을 무릅쓰고 북진하던 국군과 UN군은 앞서 1950년 11월에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공군과 장진호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다 흥남부두까지 후퇴했다. 그때 흥남부두에는 남으로 피난 가려는 10만여명의 주민들도 모여 들었다.

흥남 철수:
피난민 14,000명 수송한 메레디스 빅토리 호의 기적

피난민까지 구출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많은 피난민들이 193척의 배에 나뉘어 실려 국군·유엔군과 함께 가까스로 북한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14,000명을 거제도까지 실어나른 미국의 메레디스 빅토리 호’(Meredith Victory)의 ‘기적’은 너무나 유명하다. 제2군단장 김백일 장군과 통역을 맡았던 미 제10군단 현봉학 고문이 10군단장인 에드워드 알몬드 소장을 간곡하게 설득함으로써 피난민 수송이 성사됐다.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2014)은 빅토리 호에 울부짖으며 매달리듯 승선하는 피난민들의 참담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040.jpg▲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
 
“분단의 고리 잘라내는 책임은 우리의 몫이다”

물론 승선하지 못한 피난민들은 그대로 북에 남겨졌다. 따라서 빅토리 호의 기적은 전장에서 꽃핀 휴머니즘의 극치였지만 그날의 흥남부두는 또한 거대한 이산의 현장이었다.

영화 덩케르크에서 들은 명대사 한 구절이 유난히 기억에 짙게 남은 이유도 여전히 분단이 현실인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일 것이다.

043.jpg▲ 영화 '덩케르크' 스틸컷 / 덩케르크 잔교 위에서 육군 대령과 해군 사령관의 대화 장면
 
“조국이 저기잖아요. 눈 앞에...”
“보인다고 갈 수 있는 건 아니지.”

덩케르크 해변의 잔교 위에서 해협 너머의 영국 땅을 바라보며 수송선을 기다리는 육군 대령과 해군 사령관의 대화이다.

참혹했던 2차대전을 치른 지금의 영국, 프랑스, 독일의 국민들은 비자 없이 서로의 영토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러나 같은 민족인데도, 걸어서도 당도할 수 있는 땅인데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도 한 때의 과거를 회상하며 영화 속 대사처럼 ‘그땐 그랬지…’와 같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결국 분단의 고리를 끊어낼 임무는 바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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