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한나 김 시민운동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기억해야 통일 앞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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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김 시민운동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기억해야 통일 앞당긴다”

코리안드리머
기사입력 2017.08.0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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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jpg▲ 한나 김 시민운동가
 
지난 6월 25일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한 손에 태극기, 다른 한 손엔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Remember 6·25!”… 아직도 진행중인 한국전쟁을 잊지 말고, 하루빨리 그 전쟁을 끝내어 통일을 이루자는 캠페인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여 후인 7월 27일에는 미국에서 ‘Remember 727’ 행사가 거행됐다.

727은 한국전쟁 정전협정체결일인 7월 27일을 의미한다. 미국은 2009년에 이날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지정한 후 해마다 그 의미를 되새기는 기념식을 갖고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한미 양국에서 한 달 간격으로 같은 성격의 행사가 열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이 있다. 재미교포 한나 김(34, Hannah Kim/ 김예진)이다.

찰스 랭글(86세, Charles Rangel)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 수석보좌관이었던 김 씨는 ‘유엔군 참전의 날’을 공식 기념일로 지정하는 법안 통과를 위해 2008년부터 리멤버 727 캠페인을 펼쳤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9년에 이 법안이 美 하원·상원을 통과했고 그 해 7월 27일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싸인함으로써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날로 공식 지정되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UN군은 총 55만여 명인데 그 중에 미군은 53만여 명이다. 거의 대부분의 병력이 미군이었던 셈이다. 이들 중 전사/사망자(포로·실종·부상 중 사망)도 5만4천여 명에 달한다. 한미동맹을 혈맹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문제는, 중국과 북한의 관계다. 지난 7월 초 독일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날에)북한은 우리의 혈맹”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불러왔다. 6·25 전쟁 때의 한미관계와 북중관계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리멤버 625 행사가 있던 날 만난 한나 김은 “적국이라고 하더라도 그들 안에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큰 희생이 있었다”고 말했었다. 그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에 중국과 미국이 연합군이 되어 일본을 상대로 싸워 이기기도 했다. 그로부터 5년 후의 한국전쟁에서는 서로 적국이 된 것”이라며 이제는 편가르기를 멈추고 한반도 통일을 위해 중요한 세 가지 가치, 바로 ‘기억’, ‘인정’, ‘화해’를 하자고 강조했다.
인터뷰 주인호 / 글·사진 허경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유관순 누나’

“제가 6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니 한국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아요. 그런데 어렴풋이 듣게 된 ‘유관순 누나’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나 봐요. 저에게는 언니가 맞는 거겠지만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오면 항상 ‘유관순 누나’라고 대답하곤 했대요. 미국에서 자라는 동안에는 잔다르크도 존경했었어요. 나이도 어린데다 연약했던 몸으로 나라를 위해 용감하게 자신을 희생했던 여성들이죠.”

한나 김은 우리들의 기억속에 있는 유관순 열사의 모습처럼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즐겨 입기도 하고 태극기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국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 한국으로 유학을 결정, 서울대에서 영문학과를 다니며 한국인들과 ‘정’을 나누었다. 졸업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캘리포니아주립대 전문경영인 과정을 거쳐, 조지워싱턴대 정치경영대학원에서 의회관계학 석사를 마쳤다. 
그는 유관순 열사를 동경하고 한국과 사랑에 빠지면서 “한반도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이후 제2의 삶 시작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라는 말을 누구나 쉽게 주고 받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김 씨는 자신의 삶이 그러하다면서 지난 날 자신의 과오로 빚어졌던 교통사고의 기억을 떠올렸다.

“2006년 어느날, 미국에서 졸음 운전을 하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한 순간의 실수로 죽음의 문턱까지 간거죠.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유증을 안고 살아갈 정도로 심각한 사고였습니다. 그 때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이제부터 나의 삶은 ‘덤’이라는 것.”

김 씨는 그 때부터 하루하루를 내일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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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오늘 당장 무엇을 해야 하고, 누가 중요한지를 늘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가끔 저를 보며 ‘왜 이렇게 쓰러질 정도로 오버하는가’ 묻습니다. 당연하지 않나요? 내일 당장 죽을 수 있으니까요. 남들은 오버한다고 볼 수 있지만, 전 최선을 다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한때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다고 스스로 생각한 그는 나머지 삶을 한반도 통일을 위해 기여하며 살겠다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가장 먼저 한국전쟁 참전국을 돌며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겠다고 다짐한 후 사고일로부터 11주년이 되던 날인 지난 1월 19일에 무작정 짐 가방을 싸 들고 세계 여행길에 나섰다. 그 동안 전쟁 당시 적국이었던 중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까지도 포함해 총 26개국을 투어하고 조국에 들어와 지난 6월 25일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과 태극기를 두 손에 들고 ‘리멤버 6·25’를 외친 것이다.

6·25 전쟁 잊지 말아야 발전동력도 얻을 수 있어

그는 자신이 한국에서 ‘리멤버 625’, 미국에서 ‘리멤버 727’을 외치는 이유는 그 역사적인 두 날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더 발전된 다음을 기약할 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는 지금도 교통사고로 남겨진 통증을 느끼지 않는 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통증이 제게 항상 이렇게 리마인드 시켜줍니다. ‘너는 덤으로 살고 있다. 그러니 오늘 하루에 감사해라. 그런 큰 사고를 당하고도 살아남은 너는 행운아다.’ 라고요. 그 통증 때문에 저는 오늘에 감사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힘을 냅니다. 감쪽같이 나았다면 또 실수하거나 나태해지거나 하며 살아왔겠죠.”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김 씨는 아직 종전이 아닌 휴전이기에 6·25는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 기억이 있어야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분단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통일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통일을 위해서는 ‘기억, 인정, 화해’가 긴요

김 씨는 우리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Re-unification)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억’(Remembrance), ‘인정’(Recognition), 그리고 ‘화해’(Reconciliation)가 왜 절실하게 필요한지를 설명했다.

“인정이라는 말에는 ‘너도 아팠고 나도 아팠다’라고 하는 상호 이해의 정서가 담겨 있습니다. 기억을 통해 사실을 인지했다면, 이제는 서로의 고통에 대해 연민하고 누군가의 희생에 감사를 표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게 제일 어려울 수 있는데 화해해야죠. 적국이라고 계속 선을 그을 건가요? 화해 없이는 통일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촛불·태극기 나눠 들고 통일행렬에 동참하자”

지난 겨울에는 촛불집회와 그에 따른 대통령 탄핵으로 국민들의 마음마저 얼어붙었었다. 김 씨는 오랜만에 찾아 온 조국에서 이런 시국상황을 접하면서 ‘이제는 남북이 아닌 남남이 분단되는 것인가’라는 우려와 개탄을 느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지난 몇 개월간 험난했던 탄핵정국을 지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은 태극기를 보수, 촛불을 진보, 그리고 성조기를 마치 ‘악의 제국’을’ 상징하는 깃발처럼 인식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있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이 발발했던 때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일반 국민들은 그저 공포 속에 다만 목숨만이라도 살아 남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촛불 앞의 간절한 기원이었다. 그때 우리의 젊은이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위해 전사한 5만여명이 미군 등 유엔군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켰다. 그것은 태극기의 승리였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할까.

한나 김은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며, 자유를 얻은 우리가 할 일은 촛불과 태극기를 양손에 나눠 들고 이 땅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직접 전쟁을 치르며 희생을 했고, 부모님들은 폐허가 된 나라를 지금처럼 성장시키기 위해 고생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과 고생으로 자유를 얻었죠. 지금 세대가 할 일은 자유를 얻은 만큼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직접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시민운동가들이 하는 활동에 단 한두 번만이라도 관심을 갖고 참여해 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관심이 먼저 앞장서 통일운동을 펼쳐온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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