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문화적 삶] “오늘 저녁 지는 해를 붙잡고 내일 아침을 기약한다”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문화적 삶] “오늘 저녁 지는 해를 붙잡고 내일 아침을 기약한다”

기사입력 2017.06.07 10:3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11 (4).jpg▲ 코타키나발루의 석양
 
037.jpg코타키나발루(Kota Kinabalu)는 말레이시아 사바주(州)의 주도(州都)로 남태평양 보르네오섬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19세기 말 영국령으로 식민지배를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호주와 일본군의 격전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종전 후 재건돼 현재는 전 세계적인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2차세계대전 격전지, 이젠 아름다운 휴양지로 각광
해 지는 풍경은 세계 3대 석양에 꼽히기도
일출은 미래를, 일몰은 변화를 의미한다는데...

“어떤 날은 하루에 해가 지는 것을 마흔 세번이나 보았어요. 알고 있나요? 사람들은 정말 슬플 때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을...”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대표작 ‘어린 왕자’(1943) 속 어린 왕자가 작은 소행성 B621호에 앉아 해가 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계속해서 의자를 몇 발짝 뒤로 물려 놓으며 하는 말이다. 세계 3대 석양으로 손꼽히는 코타키나발루의 해변에 앉아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운 석양 노을을 보고 있자니, 어린 왕자는 무엇이 그리 슬퍼 황혼을 반복해서 바라보았을까 궁금해졌다.

‘어린 왕자’는 시적 언어로 쓰인 한편의 동화 같은 소설이다. 당시의 시대상이나 자신의 상황에 대한 작가의 깊은 성찰이 소설의 주제지만 쉬운 문장의 메타포(Metaphor: 은유적 언어)를 통한 교훈적 메시지가 많아 실제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도 평가돼 왔다.

생텍쥐페리는 원래 군인이었다. 프랑스 출생으로, 공군에 입대해 비행조종사가 되어 제2차세계 대전에도 참전했다. ‘남방우편기’,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등을 쓴 그의 마지막 작품이 1943년에 발표한 ‘어린 왕자’다. 1944년에 그는 아프리카 상공을 비행하다 비행기와 함께 실종됐다. 지난 2008년 독일의 한 조종사가 생텍쥐페리의 비행기를 직접 격추했던 사실을 고백함으로써 그의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가 비로소 풀리긴 했다. 그러나 그의 삶 자체가 죽음과의 끊임없는 대결이었다고 평자들은 해석한다.

생명의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을 스스로 선택했던 그가 동화같이 아름다운 소설작품들을 창작했다는 것은 그의 정신이 그만큼 치열하게 자유와 평화를 갈망했다는 반증일 수 있다.

039-2.jpg▲ 영화 '어린왕자' 스틸컷
 
소설 ‘어린 왕자’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만큼이나 번역과 해석의 차이 때문에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가 해질녘을 43번 바라본다는 은유의 배경은 무엇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고 점령하기까지(1940년 5월 10일~6월 22일) 43일이 걸렸다는 사실과 연관시키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생텍쥐페리에게 해질녘은 사실 평화롭고 따뜻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 평화가 끝나는 것이 슬퍼 소설 속 상징을 통해 계속 시간을 되돌려 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코타키나발루 해변에 붉은 노을이 이글거리면 사람들의 대화 소리는 줄어든다.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놓고 있거나 조용히 카메라 렌즈를 들어올릴 뿐이다. 사랑만이 가득할 것 같은 낭만적인 휴양지가 전쟁으로 한때 폐허로 변했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11 (3).jpg▲ 코타키나발루 선셋비치
 
038.jpg▲ 코타키나발루 마누칸 섬 한 구석에 놓인 벤치 위에는 제2차세계대전 때 이곳에서 있었던 호주-일본군의 격전으로 퍼부어진 포탄의 잔해들이 ‘Remnant of World War, 1941-1945’라는 표지판과 함께 보존돼 있다. 그 옆에는 휴양객들이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벤치가 나란히 설치돼 있다. 그 사이를 헤엄치는듯한 모습의 열대어 동상을 함께 바라 보면서 과거와 현재, 전쟁과 평화, 그리고 선악이 혼재하는 세상을 생각했다.
 
흔히 일출은 미래를, 일몰은 현재를 뜻한다고 한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나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아쉬움이 잠시 밀려오기도 하지만 ‘괜찮다’는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태양은 지금 끝나가는 이 순간을 가장 강렬한 빛으로 전송한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닌 또 다른 내일에 대한 기약이기도 하다. 황혼이 일출 못지않게 장려한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지금의 한국은 일출의 아침이 아니라 일몰의 황혼 녘을 맞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과거에 얽매이거나 막연한 미래만 꿈꾸기 보다는 많은 변화와 혼란에 직면해 있지만, 그럴수록 ‘지금 이 순간’에 열정을 다하는 자세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코타키나발루 해변의 석양이 이를 일깨워주는 듯 싶었다.
 
<저작권자ⓒ코리안드림 & www.kdtimes.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