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봄날의 캠퍼스 -"청춘에게 호락호락한 시대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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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캠퍼스 -"청춘에게 호락호락한 시대는 없지만..."

기사입력 2017.03.3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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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석.jpg▲ 조규석 본지 주필
모처럼 광화문에서 버스로 귀가하는 길에 연세대 앞에서 눈에 띠게 변모한 캠퍼스의 외형을 목격했다. 캠퍼스와 거리 사이를 강고하게 차단했던 담벽들이 말끔히 철거됐고 그 자리가 정원처럼 새로 말끔하게 단장돼 있었다. 새삼스러운 발견이었다. 그 변모는, 시쳇말로 하면 대학이 개방을 통해 세상과의 소통을 넓히기 위한 시도일 것이라고 멋대로 해석했다.

나는 서둘러 버스에서 내려 활짝 열린 정문 앞에서부터 캠퍼스와 잇닿아 있는 인도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40여년 전 어느 날의 이 거리를 떠올렸다.
 
1973년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학생들의 반유신(反維新) 투쟁이 격렬하게 이어지던 시기였다. 그 때 문교부(현 교육부) 출입기자였던 나는 종합청사(기자실)에서 가까운 연세대를 일부러 찾아 갔다. 물론 학생들의 시위취재는 경찰서를 출입하는 올챙이 사건기자의 책임이다. 그러나 교육문제 전반에 대해 글을 쓰는 입장으로서 시위현장에서 그 실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다.
 
마침 시위는 소강 상태였다. 정문 앞에는 겹겹이 바리케이트가 쳐졌고 학생들은 캠퍼스 안 백양로에서 유신철폐를 외치고 있었다. 쇠망으로 복면한 무장 경찰이 겹겹이 정문 앞을 에워 쌓고 있었다. 사실상의 전장(戰場)이나 다름 없었다. 나는 경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정문 바로 앞에서 학생들을 속절없이, 오래 오래 그냥 바라보다가 겨우 그 자리를 빠져 나와 인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아직도 최루탄 냄새가 코에 매캐했고 목이 따가웠다.
 
그날 나는 말을 잃었다. 아니 가슴으로 울었다고 해야겠다. 현장에서도, 종합 청사 기자실로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유신에 대한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날이면 날마다 이어지는 젊은이들의 절규가 가슴 아파서만도 아니었다. 젊은이들의 절규로도, 그것을 향해 공권력이 쏘아대는 최루탄의 매연으로도 시대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인식으로서 울었다. 말하자면 그때 나는 고통 속에서 견디어 낼 수밖에 없는 역사의 가혹함을 거듭 확인하는 심정으로 울었다고 지금 말할 수 있다.
 
새삼 돌이켜 본들 허망한 회고이긴 하지만 어쨌든 엄혹한 시대였다. 언론에는 재갈이 물렸다. 당연히 유신을 비판하는 직필은 시도할 수도 없었다. 그 때 내 나이 서른 한 살, 그나마 가슴 속에 눈물이 남아있기 때문이었을까. 짧은 기자연륜이었지만 어쩌다 논설필진으로도 참여했던 나는 그 무렵 <4월의 캠퍼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감상적인 문장으로 대학의 현실을 에둘러 기술했다.
 
"...젊은 생명력으로 충만해야 할 4월의 캠퍼스가 끝없는 소요 아니면 끝없는 정적에 묻혀 버리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그 같은 아픔이 무엇 때문인가를,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묻자는 게 아니다. 이 진통이 끝나는 날이 언제일까에 대한 답을 갖지 못한 현실이 슬플 뿐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名句로 시작되는 T. 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에는 '나는 레만 호수가에서 울었노라'는 구절이 나온다.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시인은 비정한 역사를 생각하며 그렇게 읊었을 것이다. 이 시대에 한국의 시인은 이렇게 슬픔을 詩化해야 할 것인가. '나는 닫힌 대학의 정문 앞에서 울었노라'고..." (조규석 칼럼 모음 '소리의 시대'-1975년-에서)
 
오늘의 젊은 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40여년 전의 젊은 세대가 돌파하려 했던 현실과 어떻게 다른가. 대학 정문 앞에 바리케이트가 사라지고 최루탄의 매연에 눈코를 가려야 하는 일이 없어 졌다고 해서 그들이 훨씬 행복해 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정문을 가로 막았던 바리케이트는 치워진지 오래이고 철책 담도 이제 헐리었지만 오늘의 젊은 세대는 학교를 떠나는 순간 그 때보다 더욱 강고해진 사회적 벽 앞에서 좌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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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 벽은 사실상 추상개념이지만 그 추상이 현실에서 구체적 압박으로서 청춘의 미래를 옥죈다. 그래서 그들은 '3포(결혼·출산·취업 포기) 세대'라는 자기 비하(卑下)로서 자신들의 하찮은 정체성을 스스로 야유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조국을 'Hell조선'이라는 造語로 혐오하고 '한국이 싫어서'라는 제목의 소설(장강명 작:민음사-2015)에 공감하면서 호주·캐나다처럼 땅 넓고 인구 적은 나라들을 경쟁 없는 '천국'으로 선망한다.
 
40여년 전 그 때나 지금이나 해마다 수많은 젊은이가 대학에서 사회로 쏟아져 나온다. 그 때는 젊은이들이 정의라던가 자유라던가 하는 그런 추상개념의 쟁취를 위해 집단의 물리적 힘을 모아 정치권력과 싸웠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취업이라는 구체적 생존목표를 위해 개별적 역량만으로 싸워야 한다. 더구나 문제는, 그 싸움의 상대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에 있다.
 
누구와, 무엇과 싸워야 하는가. 체제와 제도인가. 정치권력인가. 기득권 세력인가. 기성세대 모두인가. 귀족노조 혹은 재벌가인가. 아니면 부모인가, 자기 자신인가. 모두가 책임자인데 모두가 무책임하다. 정체마저 종잡을 수 없는데 지난 날보다 훨씬 더 강고하고 높은 벽 앞에서 지금 젊은이들은 매운 시대의 최루탄에 숨막혀 하고 있는 것이다.
 
싸워야 할 대상이 모호할 때 불안은 증폭된다. 오늘의 젊은 세대가 그 꼴이다. 연대에서 일산 집으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그런 상념에 젖어있던 나는 그 시간에 캠퍼스에서 강의를 듣고 있을 학생들의 미래, 아니 그들이 곧 부닥치게 될 현실의 벽을 생각하며 착잡했다. 나의 착잡함은, 그것을 일반화하면 오늘의 모든 젊은이에 대한 연민이다. 연민은 대개 슬픔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그날 내 심경이 그랬다. 청춘에게 호락호락했던 시기는 어느 시대에도 없었다는 걸 잘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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