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문화적 삶] 필리핀 지폐에 들어있던 '한국의 아픈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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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삶] 필리핀 지폐에 들어있던 '한국의 아픈 과거’

기사입력 2017.04.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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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를 보면 한 나라의 역사가 보인다

화폐는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축약된 표징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이 숭모하는 인물이나 유물·유적, 또는 민족 정신의 표상 등이 인쇄(지폐)돼 있거나 주조(동전)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문국의 화폐에 얽힌 사연을 알아보는 것도 여행하는 재미의 하나일 수 있다.

그런데 필리핀의 화폐에서는 한국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바로 500페소짜리 지폐(구권)의 앞뒤 면에 그려진 인물, ‘베니그노 아키노’(Benigno Aquino, 1932~1983) 전 상원의원의 초상과 그의 과거행적을 통해서이다.

046.jpg▲ 필리핀 500페소 화폐. '베니그노 아키노' 전 상원의원의 초상이 그려진 구권(왼쪽)과 그의 부부(아내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초상이 그려진 신권.
 
필리핀 민주화의 상징, 베니그노 아키노

베니그노 아키노는 필리핀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이다. 1970년대 초 마르코스 독재정권과 투쟁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후 10여년후인 1983년 귀국하던 날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당했다. 이 사건에 대한 분노는 피플파워로 이어져 21년간 지속돼 온 마르코스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고 미망인이 된 아키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Corazon C. Aquino, 1933~2009)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 부부의 초상이 500페소짜리 지폐(신권) 앞면에 인쇄돼 있다. 이들의 아들인 ‘베니그노 아키노 3세’(Benigno Simeon Aquino Ⅲ, 1960~ )가 현 두테르테의 전임 대통령이기도 하다.

종군기자 아키노와 한국전쟁의 참상

아키노 전 상원의원은 ‘마닐라 타임스’의 종군기자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 500페소짜리 구지폐에 실렸던 그의 한국전쟁 종군기사는 우리에게도 소중한 사료(史料)로서 읽힌다.

047.jpg▲ 필리핀 500페소 구권으로 2010년에 발행이 중단, 2015년까지 통용되다 신권으로 교체됐다. 앞면에는 베니그노 아키노(Benigno Aquino, 1932~1983) 전 상원의원 초상화와 그가 한국전쟁 종군기자로 활동할 당시 사용했던 수동타자기 ③가 실려있다. 뒷면에는 아키노 전 의원이 종군기자로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과 ‘마닐라 타임스’에 기고한 한국전쟁 관련 기사 ①, 그리고 필리핀 참전 군인들에게 꽃을 팔며 식량을 구걸하는 한국 소년·소녀의 모습 ②이 그려져 있다.
 
① ‘제1 기병사단 38선 돌파(1st Cav knives throught 38)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군복을 입고 카메라를 든 청년 기자 아카노의 모습과 함께 ‘Korea’, ‘Seoul’, ‘Kaesong(개성)’ 등의 한국 지명도 나온다. 이를 보게 되는 한국인은 자연스럽게 한국과 필리핀 사이에 오랫동안 돈독하게 이어진 역사적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② 지폐 가운데에는 군인 두 명에게 꽃을 파는 여자와 먹을 것을 구걸하는 어린 소년도 그려져 있다. 바로 필리핀 군인과 폐허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참담한 모습이다.

종군기자 아키노의 눈에 비친 한국 전쟁의 참상은 그의 펜과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다 건너 필리핀에도 전해졌고, 휴전 후 한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필리핀이 적극적인 원조를 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필리핀 국민의 한국에 대한 사랑 반영

③ 아키노가 종군기자 시절 사용했던 수동타자기도 지폐 상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이 타자기는 현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1층 전시실에 보관돼 있다. 지난 1987년 그의 측근인 다니엘 라밀(Daniel Ramile)이 당시 평민당 당사를 찾아 한국의 역사를 기록했던 아키노의 유품이라며 기증한 것이다.

048.jpg▲ 1987년 당시 평민당 당사를 찾은 아키노 전 의원의 측근 ‘다니엘 라밀’(오른쪽)이아키노의 유품인 수동타자기를 기증하는 모습이다. 타자기는 현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1층 전시실에 보관돼 있다.(출쳐=김대중도서관)

아키노는 종군기자로 참전한 후 본국으로 돌아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KOREA’란 영화 시나리오도 썼다. 그가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을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필리핀 지폐에 인쇄된 그의 기사와 전쟁 당시의 한국 모습은 비단 아키노라는 역사적 인물뿐만이 아니라 필리핀 국민 전체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래세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 500페소짜리 구권 화폐는 2015년까지 약 30여년간 통용돼 왔으나 발권은 그에 앞서 지난 2010년에 중단됐고 현재는 신권으로 바뀌었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상징했던 구권의 사진 대신 신권에는 아키노 부부가 밝게 웃음짓고 있는 표정의 초상화만 선명하다. 한국인으로서 조금은 아쉬울 수도 있지만 그만큼 국력의 역전이 가져온 변화라는 긍정적 해석도 할 수 있겠다.

전쟁 당시 필리핀으로부터 원조를 받던 한국의 경제규모가 이제 필리핀의 10배 이상이고 필리핀을 지원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국가의 비전에 대해 엄중한 마음으로 성찰하게 된다.

통일에 대한 회의적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북한에 대한 무관심,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아무도 한국에 관심을 갖지 않고 한국전쟁을 남의 일이라며 도와주지 않았다면 우리의 현대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과거를 망각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국가적 대 변혁이 예고된거나 다름없는 시점에서, 우리의 미래 세대가 번영하는 조국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해갈 수 있도록 어떤 준비와 자세가 필요한지를 깊이 생각해야 할 때이다. 필리핀 구지폐의 사진이 우리에게 일깨우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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