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도향 가수] “영혼의 힐링을 위해 음악으로 교감한다”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김도향 가수] “영혼의 힐링을 위해 음악으로 교감한다”

코리안드리머
기사입력 2017.02.01 09:3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031.jpg▲ 김도향 가수 / 서울오디오 대표이사
 
15초만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TV 광고의 세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단연 음악일 것이다. 중독성있는 멜로디로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고 단순한 가사에 메시지를 녹여 기억에 오래 남아 회자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광고음악(CM송)이다.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시(詩)’를 어려운 문학이라고 하듯 CM송도 결코 쉬운 분야가 아니다. 김도향은 그런 광고음악을 3,500여곡 제작하고 대부분을 히트시킨 CM송의 대가이다. 그를 만나 그의 음악 세계에 대해 들어 보았다.

1945년에 태어난 해방둥이 김도향은 올해로 데뷔 47주년을 맞았다. 그는 CM송 외에도 사가(社歌)·교가 1,000여곡을 작곡했고,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 6개 구단 가운데 한두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구단의 구단가·응원가도 제작했다.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 ‘공포의 외인구단’ 등의 음악감독도 하며 어른, 어린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사랑 받은 목소리의 주인공 역할도 맡아 했다. 그 시절을 함께 거쳐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의 음악적 감성에서 나온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일흔을 넘긴 나이지만 아직도 그는 윤종신, 데프콘, DJ DOC, 울라라세션 등 젊은 후배 뮤지션들과도 앨범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다보면 그들의 트렌드를 알수 있고 관객들에게 다가갈 기회도 많아진다”고 말하는 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도전가'인 셈이다.

인터뷰 주인호 / 글 허경은


영화감독을 꿈꾸었던 유년 시절

세기의 명작으로 손 꼽히는 영화 <시네마천국> 속 남자주인공 ‘토토’는 영사기사와 우정을 나누며 매일 영사실에 앉아 영화를 보는 ‘특권’을 누리곤 했다. 토토의 모습은 가수 김도향의 유년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 때 서울을 대표하는 극장이었던 종로의 ‘우미관’은 
김 씨가 중학교 때 매일 들어가 영화를 본 상영관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우미관 옆 골목 안에 방 한 칸 세들어 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앞을 매일 지나가는데 우미관에서 ‘기도(木戶. 극장 등 유흥업소의 출입구를 지키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말)’를 보는 사람이 제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임검석(臨檢席. 단속 경찰관이 현장 단속을 할 수 있도록 극장 내부 한 켠에 설
치된 좌석)에 저를 앉히고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매일 두세편씩 2년을 보다보니 대략 천 편쯤 봤더라구요. 시네마천국의 토토보다도 제가 더 많이 봤을겁니다.”

그런 영향으로 인해 영화감독을 꿈꾸며 성장한 김씨는 중앙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할 일은 따로 있었다’고 회고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업’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백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에 빗대면, 가장 감수성이 풍부한 사춘기 시절을 천 편의 영화와 함께 했고 그 때문에 그것을 대학 전공으로까지 선택한 김 씨는 영화감독이 되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길은 다른데 있었다. 그토록 염원했는데도 감독이 되지 못한 것은 소위 ‘팔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그는 그걸 ‘카르마(Karma. 전생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로 설명했다.

“사람들은 직업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연적으로 갖게 되는 게 직업(職業)입니다. 여기서 업(業)은 불교적으로 카르마를 말하는데, 저는 카톨릭 신자이지만 성경적으로 해석해도 비슷한 개념입니다. 전생에 저지른 일에 대한 보상이나 마무리를 해야 하는게 현세에 직업으로서 나와 인연이 되는 것이죠. 결국 이번 생애에 나의 역할은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힐링하고 위로해주는 것이었기에 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기간 기공 수련과 함께 명상을 해왔다는 그다운 대답이었다. 물론 유년시절의 경험이 지금의 삶과 전혀 무관한 것만은 아니었다. 천 편의 영화 속에 담긴 영화 음악을 줄줄이 외우며 따라 부르고, 외국영화와 한국영화의 음향 차이와 수준을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소리에 대한 감각이 몸에 익혀져 자연스럽게 음악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을 것이다.

“세상에 쓸모 없는 경험이란 없다”

영화감독을 꿈꾸었던 그는 한 때 일본 유학까지도 계획했었지만 군대는 다녀와야 유학길을 알아봐 주겠다는 지인의 말에 군입대를 하게 된다. 
24개월 군복무를 거의 마치고 제대를 한 달여 앞둔 상황에서 벌어진 ‘1.21사태’(1968년 1월 21일 북한 공작원 김신조를 비롯 무장공비 31명이 침투한 사건)로 인해 사병 복무기간이 36개월로 연장되는 바람에 1년 가까이를 더 군에 남아 있어야 했다.

“군생활이 길어지면서 영화에 대한 열망은 사라졌고 뜻밖에 노래에 대한 관심이 커지더군요.”

1970년에 ‘투코리언스’(김도향·손창철)라는 그룹으로 데뷔한 김도향은 타이틀곡 ‘벽오동’으로 크게 히트를 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화계가 아닌 가요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듯 했으나, 1975년 가요계를 뒤흔든 대마초 파동으로 그를 비롯한 여러 명의 가수들이 대거 입건되며 위기를 맞게 됐다.

“당시엔 그것이 불법인지도 몰랐습니다. 그 일로 인해 하루 구금된 후 벌금을 물게 되었는데, 문제는 공연, 음반판매 등 가수로서의 활동이 금지되면서 생업에 큰 지장을 받게 된거죠.”

그 이후 종로 거리를 배회하며 포장마차라도 해야 할까 고민하던 그에게 재기의 기회를 준 곳은 뜻밖에도 광고음악계였다.

“그 전에 ‘줄줄이 사탕’ CM송으로 히트를 쳤던 일이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제가 쉬는 동안 CM송 제작건이 계속 들어오더군요. 맡은 것 마다 모두 히트를 쳤고 그러다 광고사무실까지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릴적 영화를 보며 영화음악을 들었던 것도, 대마초 사건으로 잠시 쉬었던 것도 모두 (제 인생에) 도움이 되고 약이 되었던 일들이었습니다.”

032.jpg▲ 2016년 12월 7일 여의도 전경련플라자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2016 통일실천지도자대회'에서 가수 김도향이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음악이 곧 힐링이다”

즉흥적으로 만들었다는 그의 히트곡 ‘바보처럼 살았군요’의 첫 가사 ‘어느날 난 낙엽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로 시작한다. 자연현상과 소리를 통해 인생을 깨닫고, 그것이 음악으로 재탄생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힐링이 된다. 바로 그것이 음악의 힘일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에게 물었다. “음악이란 과연 무엇인가?”

“음악은 영적인 게 아니라 매우 피지컬(Physical)한 영역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쉬’, ‘응가’와 같이 말하면 실제로 생리작용에 영향을 미치죠. 소리의 물리적 효과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도 깊게 연구되어 왔는데, 음악은 이처럼 소리의 공명현상을 통해 몸에 직접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지극히 피지컬한 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한대로 음악은 엄밀한 의미에서 피지컬한 영역이지만, 피지컬의 변화가 곧 영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가 1990년에 태교음악을 발표한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육체일 뿐입니다. 그리고 어딘가의 영혼이 끌려와 합쳐지며 부모와는 영혼이 다른 존재로 태어나게 됩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영혼의 선악에 의해 그 생의 업보가 정해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태아에 깃든 영혼이 이전 생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 모르니 달래주고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며 순수한 영혼으로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 통일한국에 달렸다

그는 수많은 세계의 예언자, 과학자, 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2025년 대한민국의 위상이 세계 최정상에 이를 것이라고 한 것을 언급하며, 실제로 그런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최근 진행되고 있는 ‘One K 글로벌 캠페인’에 대해서도 “원케이(통일한국)는 반드시 되어야 하고 될 수 밖에 없는 프로젝트”라고 단언했다.

“1930~40년대에는 전 세계가 전쟁으로 인해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비틀즈, 아바, 엘비스 프레슬리 등과 같은 팝 스타들이 속속 등장하며 대중들을 위로하고 치료해주었습니다. 지금 한반도에서 불고 있는 통일운동의 기운도 음악을 타고 전 세계에 퍼져 많은 이들을 치유해줄 것입니다. 저도 이런 일에 좋은 기운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는 얼마전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美 팝가수 ‘피보 브라이슨’에게 음악으로 사람들을 치유해 주는 ‘천사’라는 덕담을 건넸다. 어쩌면 피보의 눈망울에 비친 그의 모습도 같지 않았을까. 적어도 기자의 눈에는 영혼의 건강을 위해 노래하는 김도향도 분명 아름다운 한 명의 천사였다.
<저작권자ⓒ코리안드림타임즈 & www.kdtimes.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