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의 바겐세일 기간인 ‘블랙프라이데이’에는 매장문이 열리기 무섭게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와 앞다퉈 물건을 헐값에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까지 벌인다. 그처럼 아수라장 같은 광경도 11월로 끝났다.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코리아 세일 페스타’도 그보다 한 달 앞선 지난 10월 종료됐다. 영연방 국가들은 크리스마스 이후에 ‘박싱 데이’라는 이름의 세일기간에 돌입한다. 이렇듯 연말이 다가오면 지구촌의 여러 나라에서는 다양한 명칭을 내걸고 대규모 세일행사를 펼친다.
폭탄세일이라 불리는 이 대형행사는 소비촉진을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일종의 재고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거기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데 모든 제품의 수요-공급을 국가가 조정하는 계획경제 체제에서는 이런 빅 세일 기간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성행하는 빅 세일은 소비자 입장에서 큰 흥미거리이지만 대표적인 계획경제 국가였던 북한의 현실은 어떨까.
북한 계획경제의 본보기 ‘영웅 정춘실’
물론 북한의 계획경제는 사실상 옛말이 된지 오래다. 장마당이 보편화된데다 외화벌이, 밀수 등 사적(私的) 경제활동의 비중이 커진 지금, 북한도 소비자 중심의 시장경제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의 핵심인 '배급'제도가 거의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이제 국영공장 조차도 소비자의 니즈(Needs)를 파악해 생산계획을 세우는 실정이다. 계획경제의 틀은 유지하면서도 실제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나 다름없는 경제체제로 탈바꿈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탈북자 박송희(가명)씨가 증언하는 북한 사회의 지난 날은 계획경제의 왜곡된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 사례다.
“저도 정춘실같은 노력영웅이 되고 싶었어요.”
북한에서 군인상점을 운영했던 박씨는 북한의 영웅 정춘실을 모델로 삼았었다고 했다.
정춘실은 자강도 전천군 상업관리소 복문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평범한 상업분야 종사자였으나 나중에 영웅 칭호를 받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까지 올랐던 오른 인물이다. 그는 각 세대 별 구성원, 치수, 신발크기, 결혼이나 환갑 등의 집안 대소사까지 기록하고 관리하는 ‘우리 가정수첩’을 만들고 각 가정별로 맞춤식 공급을 정확히 해 나간 공로로 김일성 훈장과 이중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그로 인해 상업관리소 최고책임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자리에까지 올랐고 ‘정춘실 운동의 날’(1991년 10월 31일)도 제정, 그의 삶을 소재로 한 기록영화까지 만들어지기도 했다.
각 가정 식구들의 내복 치수까지 관리
박씨는 매달 인민무력부 군상관리국에서 물자를 가져오곤 했다. 그러나 공급품을 가져와 매장에 진열해놓고 오는 사람만 맞이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도 정춘실과 같은 수첩을 만들고 관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각 가정의 식구 수, 신발, 칫솔, 비누 갯수는 물론 내복 사이즈까지 다 기록하고 관리했죠. 만약 신발을 10개 들여왔다면 매장에 먼저 오는 사람에게 무조건 팔면 되는 게 아니라 관리하는 가정에 골고루 팔아야 했습니다. 사회주의 상업은 자본주의에서와 많이 다르죠. 단순히 10개 들여와 10개 팔면 되는 게 아닙니다. 그 물건이 없는 가정에 골고루 판매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각 가정의 소비패턴을 모두 기록하는 게 중요하죠.”
그는 미래의 정춘실을 꿈꾸며 세심한 기록과 충실한 관리, 판매계획 이행으로 매달 좋은 매출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실적 향상은 의무일 뿐, 고정된 월급을 받았다.
“모든 인민의 생활 면면을 세심히 관찰하고 불편함이 없게 관리해주는 일이라서 역시 인민을 위한 국가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에 와서 보니 그건 인민이 아닌 당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결국은 공급량을 강제로 소비시켜 경제를 굴러가게 만드는 거였으니까요.”
무너진 계획경제, 주민은 장마당에서 난잡한 시장경제
박씨가 철저한 매출 계획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군인상점에서 근무했기에 가능했다. 소비대상이 비교적 일반 인민들보다 처우가 좋고 생활수준이 좋은 군인과 군인가족들이었기에 관리가 수월했던 덕분이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로는 상황이 달라졌다.
“장마당이 성행하고 군인 배급도 예전같지 않다보니 상점 운영이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도 그 일을 그만두고 장마당에 나가 주민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곳은 완전히 딴 세상이더군요. 저는 그래도 군인상점 점장까지 해봤으니 장사에는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온실 속 화초였단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마당 시장은 부르는 게 값이고 사기가 판치니… 저도 사기를 당해 정신을 차릴 수 없어 그 장사도 오래 하지 못했죠.”
그는 군인가족이었기에 어려서부터 그런대로 풍족한 삶을 살아왔다고 했다.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 들어가는 삶을 살아온 그가 장마당에서 본 세상은 혼란 그 자체였다.
大전환기, 북한의 선택은?
최근의 한국은 안보, 경제,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국정운영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이듯, 혼란한 시국에서도 우리의 선택과 결단에 따라 희망적인 변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북한은 더욱 그렇다. 체제의 변혁이 절박하고 머지 않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점증하고 있다.
'영웅 정충실'의 사망소식을 통해서도 상징적 의미로서 북한 계획경제의 완벽한 종언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영웅 정춘실이 탈북했다는 소문도 한 때 나돌았지만 지난 해 7월 74세의 나이로 북한에서 사망해 김정은이 조화를 보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의 죽음은 어쩌면 시장·계획 경제가 혼재해 각축하던 상태에서 결국 계획경제의 완전한 패배를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남과 북 모두가 하나의 비전 아래 통일을 모색해야 하는 시대적 대전환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