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평일 가나안농군학교] “살아있는 양심으로 평화로운 사회 구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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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일 가나안농군학교] “살아있는 양심으로 평화로운 사회 구현해야”

코리안드리머
기사입력 2016.11.0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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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jpg▲ 김평일 가나안농군학교(제1교) 교장 / 가나안세계효운동본부 총재
 
‘새벽종이 울렸네 / 새 아침이 밝았네 /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작사·작곡한 ‘새마을 노래’의 첫 구절이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 초반부터 대한민국 국민은 아침마다 이 노래를 부르며 일하고 또 일했다. 그렇게 해서 세계가 놀라는 ‘한강의 기적’을 성취했다. 전쟁 이후 무상원조 수혜국이었던 최빈국 대한민국은 이제 원조 공여국이 됐다.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에도 성공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도약한 덕분이다.

나라의 산업화·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시기에 오히려 농촌 재건 운동의 횃불을 든 사람이 있었다 ‘가나안농군학교’를 창설한 김용기 장로(1909~1988)였다. 박 전 대통령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1962년 2월에 30여명의 최고위원(현재의 장관급)을 대동하고 이곳을 시찰했다. 그 때 학교 교장이었던 김용기 장로는 서슬 퍼런 권력자들을 맞이하고 농촌운동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그것은 훗날 새마을 운동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김평일 현 교장의 선친인 김 장로는 남양주 태생이다. 그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영향을 받아 남양주에서 ‘이상촌(理想村)’ 건설을 꿈꾸며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도 펼쳤다. 선친의 애국충정을 이어받고 있는 김평일 교장을 양평에 위치한 가나안농군학교에서 만났다. 그는 다시는 영토를 빼앗기지 않고 모두가 함께 잘사는나라, 건강한 이상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5대 째 기독 신앙을 이어온 김 교장은 어느 종교를 갖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슴에 '진심 어린 양심'이 자리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인터뷰 주인호 / 정리 허경은


2만여 직종에 걸쳐 교육생 75만 여명 배출

“육·해·공군 등 3군이 아무리 막강하더라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적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가난’입니다. 굶주림은 총·대포로도 막지 못하죠. 그래서 ‘가난을 막는 군대’를 만들자며 농사 농(農), 군사 군(軍)자를 따서 세운 것이 가나안농군학교입니다.”

김평일 교장은 가나안농군학교가 단순히 농사 짓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라고 했다. 
1950~60년대에 한국 인구의 80% 이상은 농민이었다. 그러나 영농기술이 부족해 생산성이 낮았다. 농민들이 배고픔에 허덕이는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면 또 다시 나라가 침탈되어도 이겨낼 수가 없다는 게 김 교장 일가의 당시 생각이었다.

‘이상촌’ 건설을 꿈꾸며 사회개혁운동을 했던 그의 선친이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한 것은 잘 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주민 교육이 필요하다는 신념에서였다. 개교 후 입소문이 나자 전국 각지에서 잘 사는 법을 배우겠다며 수많은 사람들이 짐을 싸들고 몰려왔다.

“박 (당시)최고회의 의장과 30명의 최고위원들이 우리 학교를 방문했던 1962년 2월 9일에 저는 20대 청년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나라를 잘 살게 하고 싶은데 여론조사를 해보니 모두들 가나안학교에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그 때 아버지께서 전한 조언에 영감을 얻고 그걸 바탕으로 70년대에 새마을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046.jpg▲ 양평에 위치한 가나안농군학교(제1교) 대회의실에 전시된 물품들. 박정희 전 대통령 방문당시의 모습이 찍힌 액자와 자필서명, 역대 대통령(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친필이 적힌 도자기, 북한 물품, 관련 책자 등이 전시돼 있다.
 
그의 선친이 전한 조언의 골자는 근면, 절약, 의식주 개선이었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성경 말씀을 빌려 원조에 의지하지 않고 일어서려면 지금 당장 열심히 일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아무리 벌어도 허투루 쓰면 일한 의미가 없다’며 절약을 역설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들도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먼저 부엌에서의 해방을 위한 의식주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방법들도 제시했다고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나안농군학교에는 역대 대통령들을 비롯 많은 여·야 정치인들이 다녀갔다. 지난해에는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전원이 교육을 받았다. 정치인과 군인들을 포함하여, 가나안을 방문한 사람들의 직종은 2만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결국 가나안농군학교는 직종, 정파, 종파에 관계없이 한국인 모두에게 꿈과 이상을 가르치는 ‘국민학교’ 라고 할 수 있겠다.

종교인은 신앙의 본래 뜻 지켜야

“어느 종교이건 간에 각자 신앙의 본래의 뜻을 알고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종교를 하나의 기복(祈福)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
다. 다른 종교는 잘 모르니 기독교만 놓고 이야기를 해 보죠.”

김 교장은 나라를 걱정하고 인재양성에 힘쓰는 것 못지않게 신앙생활도 중요하다면서 대한민국 종교인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도 털어놓았다.

“기독교는 바로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이 무엇이죠?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게 사랑인가요? 아니죠. 베푸는 게 사랑입니다. 100을 가지고 1을 나누어주는 건 베푸는 게 아닙니다. 그런 정도로만 나눈다면 기업들과 다를 게 없죠. 교회에서 재산을 모아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부 목회자들의 행태가 가끔 드러나고 있는데 이를 보더라도 종교의 존재의미가 퇴색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종교인들은 각성해야 합니다. ”

김 교장은 어느 종교나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본래의 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정신은 바로 ‘양심’이라고 말했다. 

“양심을 가슴에 두고 눈을 감고 생각해 보세요. 양심이 제 자리에 오면 만병통치약처럼 세상의 병을 낫게 할 수 있습니다. 남북통일도 마찬가지죠. 정치인들이 양심을 갖고, 특히 김정은이 제대로 된 양심을 갖는다면 이렇게 피 흘리며 싸울 이유가 없어질 것입니다.”

탈북민들은 통일의 개척자

탈북민들이 한국에 들어와 민간인과 처음 만나는 장소가 바로 가나안농군학교였다. 탈북민 정착교육 기관인 ‘하나원’이 개설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탈북자란 명칭보다 ‘귀순자’란 명칭이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김교장이 30년 넘게 탈북민들의 교육에 힘을 기울여 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김교장은 그 동안 탈북민들로 구성된 예술단, 축구단을 만들기도 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이들의 정착을 도와왔다.

“아주 솔직한 말부터 해보면, 탈북민들과 함께 사는 건 무척 힘 듭니다. 왜인가. 살아온 문화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죠. 평등을 강조하는 공산주의체제이다 보니 북에 있을 때는 옆 사람보다 열심히 일해도 배급은 똑같이 나눠받죠. 그러니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눈치를 보고 요령을 피우는 습관을 갖게 만듭니다. 그렇게 다르게 살아왔기에, 한국에 들어와도 초반엔 요령을 피우거나 눈치를 보고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토라지는 등의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던 북한 체제의 잘못인거죠. 결국 우리 모두는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줘야 합니다. 우리의 상식적 잣대로 그들의 행동을 가늠하지도 말고 나에게 순간적으로 잘못한다고 해도 인정을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그는 통일의 개척자가 탈북자라고 말했다. 남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할 때 감동을 받은 기억들은, 고스란히 통일 후 북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났을 때 전달이 될 것이란 뜻이었다. 점점 늘어나는 탈북자 수만큼 그는 통일의 개척자들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시 이상촌 건설을 꿈꾸며

그의 선대가 꿈꿨던 이상촌 건설은 지금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보면 어느 정도 실현됐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그러나 반쪽짜리 나라에서 이상촌 건설은 아직 미완(未完)이 아닐까. 국권상실의 시대를 살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우리의 선대들이 분단된 국토에서 한쪽 주민만 잘 사는 이상촌을 꿈꾼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김평일 교장은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 운영하며 성경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인간애를 실천하고자 했던 선친의 유지를 잇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너와 나 모두의 양심이 제 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고 해도 우리는 이상촌 건설의 꿈을 다시 꿀 수 있을 것이다.

040.jpg▲ 새벽 5시에 울리는 가나안농군학교의 '개척종' 앞에 선 김평일 교장. 새마을운동 노래의 새벽종은 개척종에서 연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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