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박만길 통일동지회] “여전히 가슴 뜨거운 동지들과 함께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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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길 통일동지회] “여전히 가슴 뜨거운 동지들과 함께 하기에...”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기사입력 2016.09.0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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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2.jpg▲ 박만길 통일동지회 본부장 / (사)한일교류문화원장
 
박만길 본부장은 일본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줄곧 그곳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말보다 일본어가 더 편안하다고 했다. 그가 일본에서 태어난 배경에는 일제의 조선인 징용이라는 어두운 역사가 드리워져 있다. 부산에서 조선소 기사로 일하던 아버지가 납치되다시피 일본 히타치조선소로 끌려가 그곳에서 노동자로 살던 시절에 그를 낳았기 때문이다. 1945년 그는 여덟 살이 되던 해에 해방을 맞아 조국에 들어왔지만 3년만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국말이 서툴러 친구 사귀기도 힘들고 한국생활에 적응도 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일본으로 다시 갔지만 그때는 제 신분이 불법체류자로 바뀌었습니다. 자기들이 끌고 간 조선인들, 그리고 그 곳에서 태어난 2세들의 신분을 해방이 되자 박탈했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7년 정도를 더 살다가 강제추방을 당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에 태어난 그는 스스로를 ‘화약 냄새 맡으며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2차대전 종전 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어느 곳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정체성 혼란의 고통을 겪어왔다고 했다.

“조선인을 욕하거나 주변 친구들을 괴롭히면 복수한답시고 쫓아가 주먹을 날리며 싸움질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성인이 되면서 더 이상 이렇게 살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국으로 건너와 바로 해군에 입대(해군 70기, 조타 34기)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박 본부장은 해군 복무 당시 만 7년간 전투함을 탔다. 그 덕분에 지금도 바닷가에 나가면 멀리서 배들이 쏘는 불빛신호(모르스 부호)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1960년 7월 30일 동해 거진항해전에서 북한군 생포에 공을 세워 전투공로표창을 받기도 했다.

거진항해전은 북한 경비정이 동해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한국해군 DE-72함과 북한해군 PBS-371함 간에 벌어진 수상 전투였다. 이 해상 전투로 북한 경비정이 침몰하고 북한 해군들이 수장됐으며 4명이 생포됐다(생포된 북한 해군들은 치료 후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송환됐다). 박 본부장은 그 때 세운 공로 보상금을 포함하여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아오고 있는데 그 연금 전액을 매달 통일동지회 활동비로 내놓거나 통일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에 기부금으로 후원하고 있다고 했다.

군 제대 후 부산에서 사업을 시작한 박 본부장은 1981년 ‘태평양상운주식회사’라는 무역회사를 인수해 2001년까지 20년간(1981~2001) 운영하며 한국에서는 최초로 김치, 막걸리, 버섯, 생강 등을 일본으로 수출하였다. 그동안 ‘3.1동지회’ 이사로 20년(1991~2011) 일했고 ‘한일문화교류원’ 원장직을 18년째(1998~현재)맡고 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로 가장 큰 소망은 또 그와 같은 고통을 인류가 겪지 않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간, 국가간의 갈등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박 본부장은 한일교류문화원을 운영하며 두 나라간의 갈등 해소와 화해를 도모하고, 통일동지회를 운영하며 우리 민족의 분단 극복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통일동지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나라의 예산을 괜히 축내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연로한 박 본부장은 젊은 세대들에게 앞으로의 통일 운동을 기대했다. “마음은 여전히 뜨겁지만 이제는 활동이 쉽지 않다. 나와 같은 동지들이 십시일반 모은 후원금으로 많은 젊은 활동가들이 움직여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인터뷰 주인호 / 정리 허경은

 
◆ 실향민·참전 용사들의 비영리 애국 시민단체

통일동지회에 소속된 150여 명의 회원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실향민, 한국·월남전 참전용사, 기초생활수급자 등으로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같은 분들이다. 박 본부장이 건넨 명함에는 시민사회단체라면 흔히 붙는 ‘사단법인’, ‘재단법인’ 등이 아닌 ‘비영리애국단체’ 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통일동지회 설립자인데도 회장이나 대표가 아니라 활동가임을 나타내는 ‘본부장’ 직함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0041.jpg▲ 통일동지회 사무실에 걸린 태극기 앞에 선 박만길 본부장
 
통일동지회는 정관에서 ‘국가와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염원하는 애국 동지모임’이라 규정하고, ‘상호간 사랑하며 어려움을 지원하고 정을 나누는 바탕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가입회비 및 운영과 관련해서는 ‘국가관을 갖고 가난 속에서도 모든 것을 숙명적으로 지지한다…가난을 밑거름 삼아 어려움을 극복하고 알뜰한 재정을 구축하기에 가입비 및 정기회비가 없다’고 명시돼 있다. 말 그대로 은퇴 후 연금이나 기초생활수급비 등으로 생활하는 이들이 뜨거운 애국심 하나로 모여 활동하는 단체임을 확인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통일동지회 회원들은 각자의 형편에 맞게 적게는 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자신의 연금 전액을 단체 운영비로 기부하고 있다. 그 기부금에서 일부는 시민단체에 조금씩 보탠다. 회원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통일단체를 돕는 통일단체로 활동

통일동지회 회원들은 주로 통일과나눔재단, 한국글로벌피스재단 등 통일운동을 실질적으로 선도하고 있는 단체들에게 매월 일정금액씩 정기 후원을 하고 있다.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천원의기적캠페인’에도 회원 50명 이상이 가입해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또한 각 통일 단체들이 출간해 내는 북한 인권 알리기 및 통일캠페인 자료(신문, 브로셔, 책자 등)를 이웃들에게 전달하며 홍보 활동을 돕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회원 대부분이 활동에 제약이 많은 연령과 상황임을 고려해 통일 단체를 후원하는 통일단체로서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 불량시설수리 무료봉사, 통역안내지원

통일동지회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강남구 세곡동의 리엔파크 단지는 서울시가 ‘2020 고령사회 마스터 플랜’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노인전용 아파트 단지다. 노인전용으로 지정된 아파트 8개 동에 입주한 노인들의 평균연령은 77세! 모두 전쟁과 궁핍 등 고난의 시대를 살아 온 세대이다. 통일동지회는 이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 단지 내 불량시설을 무료로 직접 수리해 주기도 하고 하기도 하고, 회비로 화장지를 구입해 공용 화장실에 비치하기도 한다. 

6 (3).jpg▲ 통일동지회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강남구 세곡동의 리엔파크 단지 내에서 통일동지회 회원 일부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한국번역가협회 정회원인 박 본부장을 비롯하여 외국어 구사가 가능한 회원들은 지역 행사가 있을 때 통역안내 지원에 동참하기도 한다.

◆ 독거노인 가정에 직접 방문

강남구에도 독거노인들이 많이 거주한다. 박 본부장은 이들이 주로 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좁은 비탈길 지역에 살기 때문에 일부러 오토바이를 마련해 통일동지회로 들어오는 후원 물품이나 식품 등을 집 앞까지 배달해주고 있다고 했다. 박 본부장은 연로했지만 아직은 오토바이 운전도 가능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얼마나 큰 행운이냐고 말한다.

6 (2).jpg▲ 박만길 통일동지회 본부장이 강남구 독거노인들에게 물품 배달시 이용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통일동지회 02-459-9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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