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북한돋보기] “아무도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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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돋보기]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칼럼
기사입력 2016.07.2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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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은.jpg▲ 허경은 편집부장
낯선 남녀가 민박집에 들어서자 주인 여자가 아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 “얘야, 손님 오셨으니 먹을 것 좀 내어 드리게 두부 한모에 술 두 병 좀 사오너라!” 정겨운 시골 민심의 소리인가? 

아니다. 실은 ‘낯선 여자 한 명과 남자 두 명이 왔으니 안전부(경찰서)에 가서 신고하고 오너라’라는 뜻이다. 함경북도 은덕군에서 협동농장 농장원으로 일했던 지선(가명)씨는 자신의 마을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흔히 쓰는 일상 속 단어에 암호를 걸어 놓은 거죠. 특히 제가 살던 마 을은 두만강 인근 국경지대라서 감시가 더 삼엄했습니다. 내륙에서부터 올라와서 두만강, 압록강을 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이 지역 주민들에겐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바로 신고하라는 지시가 많이 떨어졌죠. 대략 옷차림이나 말투가 낯설다 싶으면 일단 신고부터 했습니다.”

민박집, 식당 등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암호화 된 언어로 신고가 이뤄어졌다. 그래서 탈북을 계획한 사람들은 이동 중에 위험한 일이 닥치더라도 누군가의 도움 을 받는 것보다는 스스로 해결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지선씨는 말했다.

셋 중 하나는 스파이

함경남도 금야군에서 재봉일을 하다 탈북한 윤정(가명)씨는 스스로 정보원(스파이의 북한말)이 되었던 일화를 털어놓으며 북한은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현실인 곳이라고 말했다.

“한번은 보위지도원이 찾아와 제게 주민 감시를 시키더군요. 저는 중국에 친척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감시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지시를 잘 따르면 중국에 갈 기회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그 지시를 따랐습니다. 어차피 서로를 감시하는 게 익숙한 사회이니 큰 죄책감 같은 건 없었죠.”

엄청난 반역행위를 보고하는 게 아니었다. 주민들이 누구를 만나고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두었다가 쪽지에 써서 비밀함에 넣고 오면 되는 일이었다. 하루에 다섯 장씩 써서 내라고 하니, 쪽지를 채울 내용을 찾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사람들을 살피며 돌아다녔다고했다.

“보위지도원은 주민들을 세밀하게 감시하는 방법도 따로 가르쳐주었습니다. 가령, 장마당에 나가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져보라는 거였죠. 그 때 돌아오는 대답을 잘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쪽지에 적어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유도 질문을 하라는 것인데, 워낙 그런 일이 빈번하니까 주민들도 말 자체를 가려서 하니 큰 소득은 없었습니다.”

거미줄 같은 감시 체계 

북한 주민들은 어릴 때부터 학교, 기관, 직장 등에서 매주 열리는 생활 총화 시간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생활총화는 주민들이 1주일동안의 언행에 대해 상호 비판하는 자리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고역일 터인데 북한 주민들에게는 그것이 곧 하나의 문화처럼 익숙해진 탓에 감시를 당하거나 감시조에 가담하는 것이 큰 불편도 아니고 죄책감을 안겨 주는 것도 아닌 듯했다.

공개처형이 예사로 자행되고 고난의 행군 당시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했는데도 군중의 집단적 분노 표출은 없었다. 한 탈북자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강을 건너 탈북을 시도했지만, 감히 주민들을 모아 당국에 대고 불만을 토로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감시망이 거미줄같이 체계적으로 얽혀있어 혹시 누군가 그런 생각을 했더라도 결국 알수 없는 사람의 신고로 허사가 되고 말 게 뻔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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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후 중국에서 붙잡혀 북송 돼 수감된 탈북자에 대한 감시체계는 더 살벌하다고 했다.

“수감자들끼리도 조를 짜서 서로를 감시하게 만듭니다. 그 조에서 도망자가 생기면 조원들은 모두 죽지 않을 만큼 맞거나 밥을 굶거나 더 강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수감자들끼리 서로를 다독여야 했습니다. ‘동무가 도망가면 우리 모두 죽으니 제발 도망가지 마시오’ 이러면서 서로의 사정이 딱해도 서로를 신고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상 생활에서도, 감옥에서도, 군대, 학교, 직장, 어디에서도 감시를 피할 수 없는 곳이 북한이었다. 

사생활 없는 사(死)생활 

미국 정부는 지난 7월 6일(현지시간)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고위관리 11명을 인권제재 대상자로 지정했다. 북한 최고 지도자를 제재 대상에 넣은 것은 처음이다. 따라서 그것은 미국이 북한 정권에 대한 제재강화를 통해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가속화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인권유린의 범죄자로 낙인 찍혔다. 결국은 우리 민족의 절반이 3대에 걸친 범죄자의 통치 아래 70여년을 살아왔다는 사실이 새삼 드러난 셈이다. 같은 민족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자유가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임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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