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길위에서] “꿈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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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 “꿈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호주 | 시드니·울룰루
기사입력 2016.06.2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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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 글·사진 허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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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선배 언론인은 ‘사막’ 하면 떠오르는 것이 ‘운명’이라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절대성’이 사막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일까. 우리 절기와는 정반대로 겨울의 문턱을 넘어선 6월의 호주 사막이 내게 베풀어 준 것은 오로지 꿈꿀 수 있는 자유뿐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정보장교였던 T.E.로렌스의 삶과 죽음을 그린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1962)의 무대도 사막이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아라비아 사막을 낙타로 횡단하던 중 대열에서 낙오한 동료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하고 나서 로렌스는 독백하듯 토로한다.

“정해진 운명 따위란 없다."

그의 말이야 말로 역설적으로 운명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강한 거부의지의 표출로 들린다. '깨끗하기 때문에 사막이 좋다'고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그래서 더욱 무엇인가에 기대고 싶어지는 곳, 나는 그곳에서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어떤 '운명'과 조우(遭遇)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호주의 사막 ‘울룰루(Uluru)’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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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몰아내고 호주를 삼킨 백인

호주의 원주민은 ‘애보리진(Aborigine)’이라고 불린다. 호주 역사는 겨우 200년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족인 이들 애보리진은 6만년 전 호주 땅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 울룰루는 애보리진에게 가장 성스러운 땅이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루트이자 중간 기착지가 바로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시드니이다. 

오페라하우스를 마주보고 있는 하버브릿지 아래의 ‘록스(Rocks)’ 광장 인근에 첫 숙소를 잡고 광장을 돌아보니, 호주의 이민 역사를 보여주는 ‘퍼스트 임프레션(First Impressions)’ 기념비가 눈에 띠었다.

울룰루_04.jpg▲ 시드니 록스광장에 세워진 ‘퍼스트 임프레션(First Impressions)’ 기념비에 새겨진 군인(The Soldier), 죄수(The Convict), 정착민(The Settlers)의 모습. 호주 국가건설에 기여한 세 그룹을 소개하고 있다. (디자인: 버드 더마스(Bud Dumas), 1979년)
 
록스는 1788년 영국 선박 선원들의 첫 상륙지이고 이주민들이 최초로 정착한 지역이자 시드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기념비에는 호주 건국에 공헌한 세 그룹의 사람들이 소개돼 있다. 군인(The Soldier)과 죄수(The Convict), 그리고 정착민(The Settlers)이다.

영국인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를 발견하고 이 땅을 식민지로 삼아 가장 먼저 정착시킨 백인 집단이 영국의 죄수들이었다. 기념비에는 죄수들이 짐승과 다름없는 처우 속에서 강도 높은 노동을 했다고 새겨져 있다. 결국 현대의 호주인들은 건국에 이바지한 그들의 피와 땀을 기리며 기록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전하고 있는 셈이었다. 
 
국가의 폭력으로 원주민 공동체 붕괴 

애보리진의 종족 역사는 참으로 비극적이다. 백인이 지배하게 된 호주에서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애보리진은 집단 학살되거나 그 가정도 해체되어 갔다. 이른바 '백호주의'(백인 이외의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정책)의 명목으로 국가가 자행한 반인륜적 폭력이었다.

호주 정부는 애보리진 아이들을 백인 가정이나 선교시설에 강제 수용시키고 부모와의 연락도 차단했다. 그들의 언어와 문화전통도 소멸시키려 했다. 결국 애보리진 공동체는 사실상 붕괴됐다. 그처럼 참담한 세월이 70여년 이어졌다.

호주인들은 지금 생존해 있는 애보리진들을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라 말한다. 호주 정부는 뒤늦게 과거에 대한 사과와 애보리진의 종족 정체성을 회복시켜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998년부터 매년 5월 26일을 ‘국가유감의날(National Sorry Day)’로 지정하고 그들이 원주민을 대상으로 저질렀던 반인륜적 인종차별정책에 대해 범국민적 유감을 표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주민들을 호주의 첫 정착민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헌법개정에 대한 찬반여론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꿈’을 외치다

뒤늦게 자신들의 땅과 권리를 되찾긴 했지만 탄압받던 시절에 원주민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엄청난 고난 속에서도 그들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은 희망이었다.

애보리진들은 사막 한 가운데에 우뚝 솟은 울룰루를 죽은 선조들의 혼령이 모이는 곳이라며 신성시해 왔다. 세상의 중심, 호주의 배꼽이라고도 비유되는 이 거대한 바위에서는 옛 애보리진들이 남긴 캥거루, 도마뱀 등의 벽화들도 발견해 볼 수 있다. 그것들이야 말로 애보리진에게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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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꿈꾼 것은 영원히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호주 원주민으로 최초의 시집을 낸 ‘오저루 누누칼’의 시 ‘우리 민족(My People)’에는 그들이 꿈꾼 세상이 잘 표현돼 있다.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하지 않았다. 노을 비낀 붉은 땅에 빙 둘러 앉아 어린아이들에게 조상이 전해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늘은 우리들의 아버지이고 땅은 어머니 되시니, 우리는 그들의 축복으로 영원히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며…’


자연을 벗 삼고 조상에 감사하며 배 고프지 않다면 그것으로 더 이상 욕심 낼 게 없었던 그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존재하지 않아도 빛나는 별처럼 살 수 없을까

어디쯤이었을까. 은하수 별 빛만이 흐르고 위치를 거의 가늠할 수 없는 사막의 어느 한 곳에 누워 흙 냄새를 맡으며 잠을 청했다. 원주민의 마음과 같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왠지 그들의 터전에서는 그들의 방식을 따라야 할 것만 같았다. 옆에 누워 찬란히 빛나는 은하수를 바라보던 동행객이 나지막히 말했다.
“저들 중엔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별들도 있겠죠…”  
  
‘꿈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Those who lose dreaming are lost)’이라는 원주민의 속담이 문득 떠올랐다. 이미 죽어버린 별들도 몇 광년을 흘러 작은 행성에 불과한 지구촌의 생명체에게 희망의 빛으로 유난히 밝게 비추이는 곳, 바로 그곳이 사막이었다.

깨끗하고, 정해진 것 하나 없는, 하지만 날이 새면 어쩐지 좋은 운명을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곳.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너무도 많은 것들이 가득 차 있는, 말하자면 부재(不在)이면서 존재하는 공간!  

사막은 내 가슴에 하나의 또렷한 메시지를 안겨 주었다.
"뜨거운 대지 위에서 오늘을 강렬히 살고, 죽어서도 빛을 내는 별처럼 내일을 꿈꾸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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