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북한돋보기] “사랑을 알지도, 이유를 묻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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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돋보기] “사랑을 알지도, 이유를 묻지도 말라”

기사입력 2015.12.0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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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최근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외벽에 걸린 ‘광화문 글판’의 ‘2015 가을편’ 문구다. 1991년부터 시작된 광화문 글판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교보생명에서 선정한 글귀를 빌딩 외벽에 설치하여,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행인들이 잠시나마 사색에 잠길 수 있도록 하는 도심 속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번 광화문 글판 가을편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 이 우주가 ‘북한에게 주지 않은’ 두 가지가 바로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 침해 실태를 알리기 위한 도서 출간 작업을 위해 지난 여름 동안 30여명의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 개별적으로 인터뷰했다. 그들의 탈북 시기는 길게는 10년 전 이상부터 1년 미만 전인 사람까지 다양했다. 북한에서의 직업도 다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건설노동자, 농장원, 교사, 외교관, 군인, 국경경비대, 예술가 등은 물론 자기 어깨보다 높은 두만강을 까치발로 건너며 죽음의 공포와 싸운 열여섯 학생도 있었다. 

나이와 고향, 사연들이 제각기 다른 그들을 인터뷰한 후 발견하게 된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사랑과 질문이 빠진 삶을 살았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북한 주민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고, 앞으로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 미래의 통일 한반도를 위해 알아야 할 점이기도 하다.

국가권력이 국민을 사상·이론·신체가 삼위일체가 되는, 완전 무결한 집단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의 힘이 필요하다. 북한 정권이야말로 이를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을 것이고 실제로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한 ‘반복학습’을 통해 선전선동과 세뇌가 주민들을 결속시킨 것만은 분명했다.

이를 증명하듯 인터뷰에 응한 탈북자 전원은 제각기 다른 배경과 직업, 연령을 가졌지만 공통적으로 ‘생활총화’를 빼놓지 않고 말했다.

인민학교(초등학교)때부터 시작되는 생활총화는 학교, 직장, 각종 동맹, 군대 등 북한 주민들이 속한 모든 조직에서 행해지는 호상(상호)비판의 시간이다. 주로 매주 토요일마다 조직원들이 모여 지난 일주일 동안 자신이 저지른 결함(과오)과 타인의 결함을 수첩에 적어와 발표,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저지른 잘못이 없을 경우엔 생략하는가”에 대한 나의 질문에 그들 대부분은 “어찌 인간에게 결함이 없을 수 있겠느냐”며 반드시 비판할 대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다른 사람의 결함을 발견하고자 서로를 눈여겨보는 것이 자연스런 일상 중 하나라고 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정착한 이후에도 사소한 일에 비판을 쏟아내고 거칠게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은 이유가 어려서부터 몸에 배인 ‘비판하는 습관’때문일 수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만난 탈북자들 일부는 한국에 정착하던 초기에 자주 화를 내곤 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타인의 단점을 발견하고 비판하기 앞서, 장점을 발견하여 사랑을 표현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그들을 이해하고 변화를 돕거나 기다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광복 70년인 올해 들어 통일 대박론이 대두되면서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시민단체들이 한반도 통일을 외쳤다. 북한 내부에서 민중의 반란 등 혁명적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이른바 ‘북한 붕괴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북한 민중이 세습정권에 저항하지 못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사상이 투철해서? 아닐 것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감히 “왜”라고 물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탈북자들을 인터뷰하고 내린 개인적 결론이다.

리계순사범대학을 다니다 탈북한 박지원(가명)씨의 경우가 이를 단적으로 입증해 주는 사례였다. 그는 어느 날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강의하던 교수님께 “왜 사회주의 국가보다 자본주의 국가가 더 부유한가”를 질문하였다. 그 결과 돌아온 것은 참담한 시련이었다. 온 가족이 혁명화(북한 체제에 반하는 발언이나 과오를 범했을 경우 지방으로 추방되어 노동을 통해 사상개조를 받는 일)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열 세살 나이에 부모를 따라 18호 북창관리소(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28년을 살다 나온 임연숙(가명)씨의 경우는 더욱 처참했다. 함께 끌려간 아버지가 수용소 과장에게 “무슨 죄인가”를 물었다가 다른 수용소로 분리 수용된 후 생사를 알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그녀가 수용소를 나온 후에 짐작으로나마 알게 된 사실은 6.25 당시 실종되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할아버지가 월남했을 것으로 간주된 게 이유
일 것이라고 했다. 수용소에 함께 수감됐던 할머니, 어머니, 남동생은 모두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고, 겨우 살아남은 그녀가 얻은 것이라곤 광산에서 채탄공으로 일하다 생긴 진폐증뿐이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심정으로 ‘북한 주민들은 왜 들고 일어서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 의문제기에 탈북자들은 반문으로 대답한다. 
“나만이 아닌 가족의 생사를 걸고 감히 그럴 수 있는가”

광화문 글판을 올려다보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 바로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은 분명히 위대하다는 것을, 그리고 북녘 땅에는 아직 그 선물이 도달되지 못했다는 것을.

그러나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날에는 우주가 준 ‘사랑하는 힘’으로 남북이 함께 평화의 실현방안을 모색하고, 민족 전체가 ‘질문하는 능력’으로 분단과제를 해결하여 발전의 청사진을 공유하는 하나의 코리아가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12 칼럼_북한돋보기.jpg▲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외벽에 붙은 ‘2015 광화문글판 가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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