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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의 기본 방향

기사입력 2015.08.0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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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b62904d9ef18576cde0cbb6ba49e93e_BARbhvOECTRkYPqot.jpg▲ 서인택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공동상임대표
통일은, 이제 2만8천 탈북 동포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 개개인의 양심에서 그 이유와 목표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민초들이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인류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불의와 악, 비 도덕을 일소하는 것이 통일이라는 ‘진리’를 우리 8천만 민초들이 절감케 하는 것이 바로 통일운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으면서 어느 때보다도 활발해진 통일관련 논의·논란을 접할 때 마다 새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 우리 민족사의 일관된 특성이다. 그 특성이란 바로 국가적 위난(危難)의 시기마다 나라를 지킨 것은 이름 없는 민초들의 단결된 힘이었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고려시대에 몽골의 침략을 받았을 때도 그랬고, 조선시대에 임진·정유왜란과 병자·정묘호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몽골군이 침략하자 군왕과 조정은 강화도로 도망갔다. 임진왜란 때 선조임금은 의주로 피난했고 병자호란 때에는 인조임금이 남한산성에서 싸움다운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청나라 군에 치욕적인 항복을 했다. 그런 수난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살아남은 것은, 민초들의 단합과 희생 덕분이었다.

고려조에서 우리 민초들은 40여년에 걸쳐 몽골군에 맞서 싸웠다. 승려와 농민들로 이루어진 의병들이 그 주체세력이었다. 조선시대에 치른 7년간의 임진왜란 당시 일본 군대가 파죽지세로 수도 한양과 개성, 평양을 차례로 점령해 오던 때에도 민초들은 피로서 항전했다. 승병(僧兵)과 의병(義兵)들이 들고 일어났고 행주치마를 두른 아낙네들까지 결사항전을 벌였다. 

국권상실의 시대에는 어떠했는가? 지배층은 매국(賣國)에 앞장섰고 민초들은 구국(救國)을 위해 분연히 궐기했다.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된지 10년 째인 1919년에 일어난 삼일운동이 그것이다. 1945년 해방의 날을 맞을 때까지 선열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주 벌판 등 이국 땅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의 고통을 감내했고, 죽음을 무릅써야 했다. 그러나 해방의 감격과 함께 걸머지게 된 분단의 멍에는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럼 분단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민초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통일이야말로 우리 세대의 역사적 소명임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그런데 상황은 오히려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통일에 대한 민초들의 의식이 날로 냉담해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그 이유가 근본적으로 통일에 대한 접근방법의 잘못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미국의 통합을 이끈 에이브래햄 링컨은 “노예제도가 악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악이 아니다(If the slavery is not wrong, nothing is wrong)”라고 했다. 그는 전쟁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노예제라는 악과의 타협은 거부했다. 그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링컨의 도덕적 기준은 “모든 인간은 평등 하게 창조되었다”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였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 오늘날과 같이 세계 질서의 주도국이 된 역사적 배경이다.

오늘날의 북한체제와 정권이 악이 아니라면 세상에 무엇이 악인가? 그렇게 따져 물으면 과연 통일이 가능하겠느냐고 힐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일은 악과의 타협이 아니다. 통일은 정의와 선, 도덕성을 무기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새롭게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은, 인류사에서 가장 비도덕적인 분단에 대해 지금까지는 도덕적 힘에 의한 해결방안을 도외시했다는 점이다. 교류협력 위주의 통일정책이 추진 과정에서부터 간과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햇볕정책의 기조는 북한이 스스로 변화의 길을 선택하도록 한다는 의도에서는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작 변화는 북한이 아닌 우리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 먼저 일어났다.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한 채 고통 받고 있는 북한 동포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라는 절대적 명제가 점차 잊혀졌다.

통일은, 이제 2만8천 탈북 동포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 개개인의 양심에서 그 이유와 목표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민초들이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인류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불의와 악, 비도덕을 일소하는 것이 통일이라는 ‘진리’를 우리 8천만 민초들이 절감케 하는 것이 바로 통일운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거부할 수 없는 양심의 발로야말로 통일의 근본 에너지임을 거듭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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