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인성과 지식 갖춘 통일인재 양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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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인성과 지식 갖춘 통일인재 양성해야”

코리안드리머
기사입력 2015.12.2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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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과 지식 갖춘 
통일인재 양성해야”
안찬일2.jpg▲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통일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도 낯이 익은 방송인이 있다. 바로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이다.
1979년 북한 DMZ 부근에서 군복무를 하던 안찬일 소장은 서부군사분계선을 넘어 바로 한국으로 넘어왔다. 탈북자, 귀순병사라는 꼬리표를 없애기 위해 누구보다 학업에 매진하였고 학사, 석사 과정을 내리 밟고 정치학 박사가 되고나니 이제는 ‘탈북 1호 박사’라는 호칭을 얻게 됐다고 한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던 당시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이 ‘탈북자가 이렇게 많아졌는데 왜 주도적으로 북한 연구를 하는 이가 없고 주변에서 멤도는가’란 질문을 받은 것을 계기로, 한국에 돌아와 ‘세계북한연구센터’를 설립하게 되고 이후 줄곧 미국, 호주, 영국 등 세계의 북한 연구자들과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주도적으로 북한 체제 변환을 위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통일은 광복처럼 갑자기 올 것”이라고 말하는 그를 만나 통일을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들어보았다. 

<인터뷰·정리 허경은>


통일의 대안 세력, ‘탈북청년들’

“6.25전쟁 때 북한이 먼저 남한을 점령했다가 다시 남한이 북한을 점령하는 형국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모든 전쟁 속에 존재하는 점령정치를 들여다보면, 서로가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데에서부터 살상과 살육이 벌어졌습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 총이 아닌 손을 내밀 수 있지 않을까요?”

안찬일 소장은 통일을 위해서는 경제적 준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의 준비’라고 강조했다.

“만약 북한에 급변사태가 벌어진다면 새로운 세력이 반드시 북한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과거와 같이 중국군이 들어갈 수도, 우리의 국군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혹은 유엔평화유지군이 들어갈 수도 있겠죠. 그러나 북한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력들이 들어갔을 때 과거와 같은 또 다른 희생을 낳는 점령정치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을 제대로 알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 입니다. 북한을 알고 있는 자들이 들어가야 주민들을 빠르게 안정시키고 체제변화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세력을 ‘탈북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남과 북, 두 체제를 모두 경험한 탈북자들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통일의 대안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안 소장의 설명이었다. 그가 ‘통일과 나눔 아카데미(조선일보·통일문화연구원 주최)’의 원장으로 탈북자 교육에 힘을 쏟는 이유이기도 하다.

“탈북 청년들은 북한에서 12년의 기본 교육을 받고 한국에서 대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지적 능력도 우수하지만 민족분단과 가족 상실이란 아픔을 몸소 체험하였기에 생각이 깊고 통일 후 혼란도 스스로 리드해가리라 믿습니다.”

안 소장은 1945 광복 직후 북한이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러시아(당시 소련)에서 460여명의 인테리(지식인)들을 데려왔던 일을 상기하며, 북한이 붕괴될 경우 외국인이 아닌 한국사람, 그것도 상당수의 인테리 탈북자들이 북한의 민주화·시장화 등 체제변혁을 위한 역군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은 재앙 아닌 축복

한국의 청년 세대들이 통일에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재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안 소장은 말했다. 통일이 될 경우 세금 등 부담해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기 때문인데, 이는 어른 세대가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아서 그렇다고 덧붙였다.

“통일의 긍정적인 면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 면을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저 또한 많은 기회들을 통해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기 초에 통일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조사해 보면 70~80%가 통일을 반대한다고 답합니다. 그러나 한 학기가 끝나고 종강할 때 다시 설문조사를 해 보면 99%는 통일을 찬성한다고 대답합니다. 결국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요? 부정적인 면을 알아서라기 보다는, 잘 모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학교에서 북한 문제나 통일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사건, 사고만 주로 다루는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학생들을 포함하여 어른 세대에까지, 제대로 된 통일 교육이 이뤄줘야 합니다.”

안 소장은 이어 ‘통일은 축복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통일은 단순히 남북한 이산가족의 만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청년 세대가 고민하는 경제적 문제도 해결하여 부흥의 통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세대가 경제 문제를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부분까지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고령화가 심하지만 북한에는 청년세대가 많습니다. 젊은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 이것들은 경제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기본 요소가 되는데, 북한이 가진 장점이 분명히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또한 지식만이 아닌 인성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아야 지식을 옳은 일에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안찬일3.jpg▲ ‘통일과 나눔 아카데미’ 원장 안찬일 박사가 12월 16일 서울 중구 조선비즈에서 4기 졸업식 보고를 발표하고 있다.
 
자유 한반도를 꿈꾸며

안 소장이 ‘탈북 1호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만큼 학업에 매진해 왔다는 증명이다. 그가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이유도 바로 자신의 학업 경험 때문이다.

“제가 탈북을 할 당시인 1979년도에는 탈북자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1년에 한두명 정도 있었을까. 어떤 루트로 가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죠. 그런데 DMZ 판문점 부근에서 군 복무를 했던 게 저에겐 기회였습니다. 군복무를 9년정도 하던 차에 이제는 사회로 나가는냐, 혹은 군대에 남느냐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북한에서는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죠. 부모와 제가 모두 당원이었기에 김일성종합대학에 들어가라는 나름의 길이 주어지기는 했지만, 저는 DMZ에 남아 군복무를 더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뜻은 반영되지 않았죠.”

희망을 이룰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불만은 자연스럽게 남쪽 자유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DMZ에서 복무하다보니 한국 군인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직접적인 교류는 할 수 없었어도 그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자유’였습니다. 그래봤자 얼마나 군인들이 자유러웠겠느냐 마는, 제가 그들을 통해 넘겨다 본 남쪽은 분명히 ‘자유세상’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내륙지역으로 돌아가게 되면 자유세상과는 더 멀어지는 것이 었겠죠.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안 소장은 김일성 주석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 장 썼다고 한다. 개인의 의사가 존중 받지 못하는 세상,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 등, 그 동안 품었던 불만을 종이 위에 써 놓고 그 길로 남쪽으로 향했다.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 모를 지뢰밭을 넘고 자신을 향해 총알이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도 반드시 가고 싶은 곳, 그가 동경하던 자유세상 ‘한국’을 향해 사선을 넘었다.

“당시에 어머니께서 살아 계셨다면 아마 탈북을 결심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어떻게든 어머니와 가족들을 보필하기 위해 당에서 내려진 방침에 따라 살아갔겠죠. 그런데 어머니가 며칠 전 돌아가셨고 모든 게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란 점에서 그 곳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안 소장은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넘어왔지만, 그의 남은 가족들은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분노와 울음을 참아가며 지난 세월 동안 그가 더욱 학업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토록 꿈꾸던 곳에 왔지만 저 하나로 인해 가족들이 고초를 겪었죠. 그러나 이건 비단 저 개인의 일이 아닙니다. 북한이 총체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자 반드시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만약 통일을 위해 내일이라도 누군가가 목을 내 놓아야 한다면, 저는 가장 먼저 그 자리에 설 것입니다. 남은 생애 동안 목숨을 거는 각오로 북한 땅에 자유가 닿도록, 자유 한반도를 위해 달려갈 것입니다.”

미리 온 통일

그는 탈북자들을 ‘미리 온 통일’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탈북자들과 살아가며 겪는 갈등, 고민, 희망들이 모두 통일 후 겪게될 현상의 미리보기란 해석이었다.

“저 때는 탈북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만 3만명에 달합니다. 탈북민과 섞여서 살아가는 과정은 매우 중요한 통일 연습이죠. 하지만 많은 탈북자들이 정착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80~90년대에는 탈북자 숫자가 많지 않아 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자체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적응하기에 더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안 소장은 오히려 반대라고 말했다. 당시엔 탈북자 수가 많지 않았기에 정부로부터는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숫자가 너무 많아져서 최소한의 지원만 받기 때문에 정착 초기 단계에서부터 낯선 자본주의에서의 경쟁을 힘겹게 시작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을 못마땅해 하는 분들이 있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들이 받은 혜택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미리 온 통일이니까요. 그들이 통일 후에 어떤 역할을 할지에 주목해 주세요. 통일은 반드시 옵니다. 그리고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에 탈북자들이 먼저 나서서 힘을 쏟을 것입니다.”

안 소장이 탈북자 교육에 힘을 쏟고 정치·언론에 자주 얼굴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통일’ 자체만이 아닌 ‘통일 이후’를 내다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꿈꾸는 통일한반도를 함께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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