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북한 인권 문제가 중요 화두다. 2023년 1월 10일은 제75주년 UN인권기념일이며 3월 21일은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 출범 10주년이 된다. 또 올해는 북한난민법이 통과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북한 인권 문제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조명을 받게 될 때가 도래했다. 이에 본지는 5년 동안 공석이던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에 지난 7월 임명된 이신화 고려대 정경대교수를 만나 북한 인권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는 <신년 특별대담>을 자리를 마련했다. 대담은 지난해 12월 22일 오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이 대사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주>
대담은 지난 12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2022 북한 인권국제대회’ 얘기로 시작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등 국내 최고 전문가들과 빅터 차 미국 전략문제연구소(CSIS) 부소장, 로버트 킹 전 미국무부 북한 인권특사 등 해외 석학들이 참여해 중요한 북한 인권 문제가 논의됐지만 국내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주요 언론이 외면한 것은 북한 인권 문제가 처한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근거다.
Q. 이 국제대회와 관련해 국내 언론은 거의 취급하지 않은 반면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거의 전문을 녹화해 방송했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북한 인권 문제가 게토(ghetto)화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가장 걱정하는 문제이다. 게토란 특정지역에 국한된다는 의미로, 우리만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이다. 북한 인권 문제가 광범위한 국제적 공론화보다 한반도 내에서 폐쇄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줄어든 첫째 이유는 긴급성(emergency)과 국제 헤드라인(headline)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피로감(fatigue)이다. 지금 당장은 다들 북한 인권 문제보다 핵 문제 해결이 더 긴급하다고 여기고 있다. 거기에다 세계 관심이 온통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집중되어 있다. 당연히 주요 관심사 밖으로 밀려나 있는 형국이다. 피로감도 무시할 수 없는 장애 요인이다. 지난 20년간 이 문제를 끝없이 제기해 왔지만, 시원하게 해결된 것이 없다. 신임 히넌 서울UN인권사무소 대표도 지금 북한 인권 문제가 처한 상황이 과거 팔레스타인 문제와 흡사하다고 했다. 더 큰 헤드라인에 관심을 뺏기고 있는 탓이다. 북한 문제는 국제적인 보편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핵미사일을 포함한 북한의 군사 도발에 대부분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북한 주민의 인권유린 문제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둘을 철저히 연계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것이 ‘미국의소리’ 방송의 보도 태도다. 그래도 미국 지성은 북한 인권 문제를 보편적 인권이란 측면에서 바라보는 증거다.
Q. 지난 ‘2022 북한 인권국제대회’에는 국내외 거물 외교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회의를 자주 여는 것 같은데.
대사로 임명된 후 지난 4개월 동안 세계 여러 곳을 열심히 다니며 인터뷰하면서 느낀 바가 많다. 국내에는 북한 인권에 관한 개념조차 거의 없어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려고 했다. 유럽은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매우 높다. 그들은 한국의 인권 문제에 의문을 갖고 있다. 인권 문제는 인류 보편의 문제인데, 왜 한국에서는 정치인들이 싸우는가 하는 점이었다.
우리나라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대북 문제 스펙트럼이 달라진다. 공무원도 몸을 사린다. 보신주의가 팽배한 탓이다.국정원, 통일연구원, 싱크탱크 모두 그렇다. 정권이 바뀌면 프레임 짜는 데만 거의 1년이 걸린다. 그러다 보니 운영은 2년에 불과하다. 내가 열심히 일하면 그런 문제가 좀 해소되리라 본다.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 가능하도록 접근해야 한다. 대체로 보수는 ‘책임(Accountability)’을, 진보는 ‘인도(Humanity)’를 강조한다. 하지만, 북한 인권은 책임 규명과 함께 인도적 지원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인도적 지원은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과 인권을 개선하는 가장 핵심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가지를 같이 해결해나가는 게 북한문제라고 생각한다.
Q. 책임과 인도, 두 가지 접근법으로 가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여론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여론 향배가 중요하다. 여론을 통해 북한 내 인권 상황의 심각성을 지속적으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언론을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언론이 여론을 만들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국내 언론뿐 아니라 해외 언론과의 접촉도 강화하려 한다. 일본을 방문해 관방장관을 만났을 때 50여 개 언론사가 취재 경쟁을 벌이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북한 인권 문제는 언론의 관심이 지대해야 한다. 국제하이브리드 콘퍼런스 등 여러 심포지엄과 연구회, 학회 등을 통해서 여론을 움직여 보려고도 한다. 여기에서 정치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정치가 여론을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야 정치인들을 자주 만나 북한 인권 문제에 협조를 구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Q. 추진 중인 북한 인권재단 출범에 관해 말해 달라.
우리가 북한 인권재단 출범을 준비한다니까, 북측에서 ‘반북 모략 광기’라고 거칠게 비난하는 보도를 접했다. 하지만 북한 인권재단은 이미 오래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결정된 일일 뿐이다. 지금에 이르러 새삼스럽게 북한 인권재단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04년 미국에서 북한 인권법이 통과되고 나서 2005년 김문수 의원 발의로 우리도 북한 인권법을 만들고자 했으나 11년 뒤인 2016년 박근혜 대통령 때 통과됐다.
우리나라 북한 인권법에 여야가 합의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어느 한 정파가 아니라 전체 국민의 총의를 모았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법은 앞으로 어떻게 이행하느냐 하는 과제만 남겨놓고 있다.
북한 인권법의 핵심 중 하나는 북한 인권대사를 뽑는 일이다. 정확하게는 북한 인권국제협력대사다. 그때 이정훈 연세대 교수가 초대 대사가 되었다. 두 번째 핵심은 재단을 만드는 일이다. 북한 인권재단을 만들면 북한 인권 문제 조사 연구 등 활동이 크게 활성화할 것이다. 야당 몫 이사 5명만 임명되면 재단은 곧 출범되리라 본다.
Q. 군사문제가 인권 문제 속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그렇다. 잘 알려진 대로 핵미사일 개발에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북한 주민에게 밥 먹여야 할 돈을 핵 개발에 쓰다 보니 주민 삶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더구나 북한이 핵 개발 비용을 절약하려고 이미 고물이 된 영변 핵실험 시설을 용도 변경하려 한다는 정보도 있다. 핵실험을 하려면 3중수소가 필요한데. 그걸 위해 용도를 변경하려다가 자칫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장 큰 피해는 벨라루스였다. 바람 방향 때문이었다. 만일 지금 영변에서 사고가 나면, 풍향에 따라 우리 서해와 동중국까지 피해를 본다. 북한 문제에 중국이 좌시할 수 없는 이유다. 또 과거 체르노빌 사건이 터진 후 이를 수습하느라 방호복도 입지 않은 채 수천 명이 위험한 작업에 동원된 적도 있다. 북한도 핵 시설 안에서 방호복 없이 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것이 모두 인권유린이다.
Q. 북한 인권 문제와 통일문제가 연관이 있다고 보는가?
인권 문제는 인도적 차원이므로 통일과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북한 인권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통일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집중하는 것은 북한 주민의 알 권리와 식량문제 등 인권 문제다. 이를 이슈화해야 한다. 탈북자를 만나보면 한 끼를 잘 먹으면 만족하고, 세 끼를 잘 먹으면 행복하다고 한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북한 주민이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없게 최소한으로 먹이고 싶어 할 것이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다. 통일은 후순위처럼 보인다, 나도 정말 통일에 동의하지만. 어떻게 통일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정은이 무너질 수도 있고, 북한 내 체제 붕괴로 무너질 수도 있다. 미국과의 전쟁이나 김정은의 개과천선으로도 통일이 이뤄질 수도 있다. 나로서는 북한 인권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Q. 임기는 언제까지인가?
북한 인권법을 통해 만들어진 대사직이므로 임기는 없다. 보통 외교부 대사 임기는 1년이지만 계속 연임할 수 있다. 보수는 없지만, 회의 등으로 외국에 나갈 때 비용을 대준다. 임명된 후 외국에 다섯 번 나갔는데 두 번만 지원받았다. 나머지는 개인 자격으로 초청받아 다녀왔다. 그나마 NGO가 지지를 많이 해 준다. 북한 인권법은 외교부뿐 아니라 통일부와도 일을 많이 한다. 때로는 법무부, 국방부와 일을 하기도 한다. 북한 인권 문제는 정말 광범위한 분야가 참여해야 해결할 수 있는 것임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대담 = 최노석 주필
정리 = 전근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