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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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

- 3월 18일, AKU 교수협회 외교안보분과 1차 포럼을 마치며
기사입력 2022.04.0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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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우크라이나전쟁은 강대국 사이에 낀 중약소국의 비극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제정치는 양육강식의 세계로 힘의 논리에 의해 중소국들이 희생되는 역사가 반복돼 왔다

 

한반도는 주변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청일·러일전쟁에 이어, 일제 식민통치를 거쳐 강대국 정치의 희생양으로 분단됐다. 이후 소련의 사주, 중국의 지원 약속 하에 김일성이 감행한 6·25전쟁이발발했다. 전쟁 3년 동안 한국군과 유엔군이 17만여 명 전사하였고, 민간인 37만 명이 사망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전쟁 사례: 펠로폰네소스전쟁

그리스 역사가인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멜로스 대화편에 보면BC4세기경에 스파르타의 식민 동맹국인 멜로스가 적대 강국인 아테네로부터 침공을 받자, 멜로스가 아테네에 중립을 제안하면서 존립시켜 줄 것을 간청했다.

 

한편 강대국인 스파르타에게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스파르타는 아테네와의 전쟁을 피하고자 멜로스의 요구를 거절했다. 아테네는 적국인 스파르타의 동맹국을 제거한다는 안보적 이유와 다른 소국에게도 시그널을 보내기 위해 멜로스를 침공, 초토화시켜서 역사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을 통해서 소멸된 멜로스는 인류전쟁사에서 강대국 사이에 낀 수많은 약소국의 비극이고,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강대국의 행태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우크라이나전쟁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보며, 한반도에 던져주는 시사점이 많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원인과 배경

러시아는 구소련이 해체되었을 때 러시아와 유럽국가 간에는 구소련의 국가들에게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했다. 그러나 일부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가입과 나토의 동진정책으로 약속을 위반하면서 러시아는 자국 안보에 위협이 증대됐다고 인식했다

 

한편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반정부군이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다. 친서방 정권의 억압과 학살로부터 우크라이나를 비군사화, 비나치화 한다는 명분하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특별군사작전을 감행했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1812년 프랑스 나폴레옹군이 러시아 원정 시 우크라이나를 경유하여 침공을 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동계작전 등으로 프랑스군 45만 명 중 44만 명 전사로 크게 패배하여 거대한 프랑스 제국을 형성하였던 나폴레옹 황제는 몰락하면서 엘바섬으로 유배를 갔다.

 

19416월 제2차 세계대전 독·소전쟁 시, 독일군은 소련을 공격하기 위해 3개 축선인 우크라이나 방면과 레닌그라드 방면 그리고 모스크바 방면으로 침공했다. 동계전투 준비 미흡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만 독일군은 40만 명이 소련군은 110만 명이 전사한 결과,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패전하게 되었고, 소련은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동구유럽 국가들 중 1999년과 2004년에 폴란드와 발트 3국 등 일부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NATO의 영향력이 동유럽으로 확장했다. 러시아는 추가 나토가입을 차단할 목적으로 강력한 반대 입장을 견지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구소련의 영광을 부활시킨다는 명분하에 무력증강을 통한 강한 러시아 재건에 목표를 두고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친러 정권과 친서방 정권에 따라 외교 정책이 변화됐다. 크림반도의 친러 자치정부와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분리주의 반군세력과의 내전 등으로 내부적으로는 국론 분열이 심화돼 있었다젤렌스키 대통령은 2019년 집권 이후 NATO와 유럽연합 가입을 헌법에 반영시키는 등 러시아로부터 안보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친서방 정책을 통하여 안전보장을 추진하다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가치

세계 패권 국가로서 미국은 러시아의 2008년 조지아 전쟁, 2013년 시리아 내전 개입,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에 대한 불개입정책을 견지했다트럼프 정부 시절에는 자국 우선주의로 국제적인 위상이 실추되어 동맹국들을 결속 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에는 세계 최강의 미국에 대한 위상 확립을 위해 나토 동맹국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소 냉전 시 냉전 해체를 위해 미국은 중국을 끌어들여 미·소간 균형을 무너뜨려 소련을 해체 시켰던 역사적 경험이 있다. 러시아가 역사적 반복을 회피하기 위해 중국과 전략적 협력을 통해 미국과 대립하려고 한다는 인식이 미국 내에서 팽배하다. 미국은 대러시아 봉쇄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친미 국가로 전환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유럽연합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NATO의 역할과 안전보장 확립이 미흡한 상태였다.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군사 위협에 대비하는 완충지역 확보가 필요했다. 그곳이 우크라이나로서 NATO국가들 간에 결속력을 강화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우크라이나전쟁을 러시아와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더욱 활용하고 있다. 2014년 이후 중·러 간 무역과 에너지 교역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전에 중·러 양국정상회담을 통하여 시진핑 주석은 향후 30년간 러시아산 가스 1175억 달러(1405000억원) 수입을 약속하는 등 지속적으로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유럽 및 개발도상국들과 우호 관계를 고려하여 실리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일대일로(BRI) 협력 국가가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84개국이고, 33일 유엔 특별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의결 및 전쟁 반대투표에서 141개국이 참여하여 압도적으로 통과가 되었지만, 중국은 기권했다. 여기에 영토존중과 내정불간섭 등 외교원칙을 주장하면서, 대만과의 양안 문제 접근에 당위성을 고려해서 미국과 서방국가의 러시아 경제 제재에는 불참하면서, ·러 관계를 계속 진전시켜 나가고 있다.

 

군사작전 평가

러시아는 3~4일 이내에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고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고 자신하면20222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군은 대대전술단(BTG, Battalion Tactical Group)160개 부대 중 120개 전술단을 우크라이나 공격에 핵심부대로 투입하였으나, 작전지속 능력 부족으로 공격이 지연되면서 30일 넘겨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의 속전속결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로는 우크라이나의 저항 능력 과소평가와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를 비나치화 하여 해방시키기 위한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침공 명분이 미흡하였고, 러시아의 미국 및 유럽연합(EU)의 결집력에 대한 러시아의 과소평가를 들 수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쟁이 의도대로 진행이 안 되면서 장기전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및 나토군의 참전을 방지하기 위해 생화학무기 사용과 핵전쟁을 운운하면서 전세를 전환시키기 위해 집중공격을 하고 있다

 

또 러시아군은 수도 키이우를 조기에 점령하여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자, 주 작전 방향을 동부와 남부로 전환하여 집중공격하고 있다러시아는 친러 분리 독립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지역과 헤르손 등 흑해와 연한 남부의 주요 도시들을 점령한 뒤 이 지역을 영구적으로 지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 교훈

우크라이나전쟁이 주는 교훈으로첫째, 중소국가는 생존을 위해서는 강대국과 안보동맹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중요성이다.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미체결하였고, 나토에 가입하지 않으므로 인하여 유사시 군사력을 지원받을 수 있는 연결고리가 없었다.

 

둘째, 강대국 국익에 우선한 조약 및 협약은 무의미하므로 자강력을 구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다.우크라이나의 핵 폐기 조건으로 안전보장을 약속했던 1994년 부다페스트 조약과 2004년 돈바스 지역의 평화협정인 민스크 협약이 이번 러시아 침공으로 무산됐다.

 

셋째, 북한이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올해 총 11차례의 미사일을 발사하였고, 급기야는 324일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북한은 추가 핵 실험과 지속적인 대륙간탄도미사일 및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가 예상된다. 이에 대한 대비책 강구가 절실하다.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 및 정책적 제언

첫째, 자강(自强)력을 통한 튼튼한 안보의 바탕위에서 국가가 번영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사력과 물샐틈없는 국방 태세가 필요하고, 북한의 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대비한 다층적이면서 한미가 통합된 미사일방어체계를 조기에 구축해야 한다.

 

둘째, 국론 합의에 기반을 둔 일관성 있는 외교와 대북정책을 추진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남북한 교류·협력과 병행하여, 조율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비핵화 추진을 통해 지속적인 대화와 협상을 해야 한다.

 

셋째, 북한 핵 대응을 위해 전략적 타격체계조기구축과 나토식 핵공유 체계를 추진해야 한다.

 

넷째, 국익에 우선을 둔 실용적이고 균형된 다각적인 외교 정책 추진이다. 쿼드(Quad미국 인도 일본 호주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 안보회의체) 가입과 끈끈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일관계 개선과 연계하여 한··일 협력체제가 구축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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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조선대학교 군사학과 초빙교수 홍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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