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 한반도의 운명과 깊은 관계에 놓여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전쟁을 주시하는 이유이다. 우크라이나와 한반도는 <데칼코마니>의 운명이다. 세계를 가치 중심으로 나눌 때 우크라이나와 한반도는 두 개의 상반되는 가치가 충돌하는 단층선상에 놓여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쪽 단층이 활성화되면 다른 쪽 단층에도 영향을 미친다.
데칼코마니, 우크라이나와 한반도
가치 중심으로 보면, 세계는 두개의 축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 축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한 서방세계, 또 다른 한 축은 권위주의와 전체주의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이다. 이 두 축이 격돌하는 단층선상에 놓인 지역이 우크라이나와 한반도이다. 과거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이런 해석이 논리적 비약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제정러시아 시기. 러시아는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남진을 시도한다. 그 첫번째 남진의 목표는 흑해를 통해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발칸반도와 크림반도였다. 그러나 크림전쟁(1853-56)과 아프카니스탄전쟁(1878-80)은 모두 영국에 의해 좌절된다. 그러자 러시아는 극동아시아로 눈길을 돌린다. 베이징조약(1860)으로 연해주를 차지한 러시아는 삼면이 바다인 반도국가 조선으로 세력확대를 도모했고, 조선 조정의 환심을 얻는데 성공했다. 조선의 고종은 일본으로 부터 국권을 지키기 위해 러시아공사관에 몸을 의탁하는 아관파천(1896-1897)을 결행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조선의 국권을 지키는데 관심이 없었고, 자신들의 이권을 차지하는 데만 혈안이었다.
러일전쟁(1904)에 패하면서 러시아의 한반도 장악은 실패로 돌아갔다.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후 러시아에는 볼세비키혁명(1917)이 일어나 소련이라는 거대한 공산제국이 탄생 된다. 소련은 1945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이 끝나서 패퇴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반도 북위 38도선 북쪽을 차지한다. 그리고 소련군 청년장교 김일성을 꼭두각시로 세워 소련의 괴뢰정권을 탄생시킨다. 스탈린은 김일성을 군사적으로 후원해서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기 위한 6.25한국전쟁을 일으켰다.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의 기습 남침은 미국과 UN의 개입에 의해 실패하고 만다. 어쩌면 현재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70년 전에 겪었던 일을 경험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 우크라이나를 돕고자 하는 세계의 모습을 바라보면 한국전쟁 발발시의 상황이 떠오른다.
러시아, 중국과 북한의 3각함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 안보상의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러시아의 침공 행위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것은 이들 국가들이 미국과 서방세계에 적대적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이다. 현재 중국과 미국은 남중국해와 대만문제를 중심으로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와 대만을 중국의 핵심이익으로 천명하고 있지만, 미국도 이 지역에서 중국의 세력확장을 인정할 생각이 없다. 미국은 전략적 자산들을 동아시아에 집중시키는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를 주요정책으로 견지해 왔다. 인도-태평양전략, QUAD로 대변되는 미국의 전략은 중국 포위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미국의 최근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만약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진행된다면, 미국은 유럽지역의 안보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대만 복속과 아시아 지역내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중국에는 유리한 기회가 만들어지게 된다. 북한 또한 현재 자신들의 숨통을 조여오는 대북경제제재를 무력화 시키고, 한반도 전체에 주도권을 단번에 거머쥘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금년 들어 북한은 자체 개발한 것이라고는 결코 믿을 수 없는 극초음속미사일을 9번이나 발사했다. 중국이나 러시아로 부터 제공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이 미사일 도발은 모두 미국을 상대로 하고 있다. 북한, 중국, 러시아가 한통속으로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군사적 응징을 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인 러시아와 군사적 충돌은 세계를 멸망으로 이끄는 3차 세계대전이 되기 때문이다. 러시아 침략을 응징하는 유일한 수단은 경제제재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국가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유럽국가들은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에너지자원으로 의존하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불황을 겪고 있는 유럽국가들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며 러시아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과연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에 유럽국가들이 동참할 것인가? 그리고 에너지 자원을 제외한 경제제재가 과연 효과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초강대국 미국을 중심한 일극체제가 다극체제로 변화되는 과정이라는 해석이 존재한다. 쉽게 말하면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의 상실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상황이 연출된다면 한반도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대반전이 벌어지다
세계 군사전략가들은 2-3일이면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완전 접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전쟁이 시작된 지 3주가 지난 3월14일 현재,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수도를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과 시민들의 결사항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는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했고, 전 세계는 즉각 러시아의 침략행위를 규탄하며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다. 푸틴으로서는 예상 못한 일이었다. 이는 러시아 군이 가져온 보급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출병한 군인들에게 3일치 군량미와 연료가 보급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러시아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남에 따라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시위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러시아 시민들도 자국이 일으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곳곳에서 열고 있다. 이와 같은 여론의 압력은 러시아의 침략전쟁을 결코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는 곧 러시아에 대한 세계적인 경제제재로 이어지게 되었다. 제재에 소극적이었던 독일이 적극성을 띄고 러시아 제재는 물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까지 나섰다. 그리고 영세중립국을 표방하던 스위스가 러시아 제재에 나선 점은 주목할 만하다. NATO가 분열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강력한 동맹체로 뭉치게 계기가 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러시아 에너지 수출에 대한 제재는 예외로 하고 있지만, 이를 제외한 경제제재 만으로도 러시아의 숨통을 조이기에 충분해 보인다.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대한 국제금융망(SWIFT)에서 퇴출, 해외자산 동결, 글로벌 기업들의 러시아 투자 철회 등의 초강수 제재를 실시했다. 서방세계의 이러한 제재는 시행과 동시에 러시아 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 러시아의 루불화는 폭락하게 되었고, 곧 국가부도사태를 맞이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의 군사작전이 성공하여 설령 우크라이나를 점령한다 하더라도 푸틴의 의도는 실패로 끝날 것이며,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무덤이 될 공산이 크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전쟁의 승패를 떠나서 러시아가 회복하기 어려운 심각한 경제난을 맞이할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비록 러시아로 인해 에너지와 천연자원에 대한 수급 문제로 세계경제도 큰 타격을 입게 되겠지만, 이는 세계가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만큼 일정기간의 조정기를 통해 회복할 것이다. 그러나 몰락한 구소련 경제를 가까스로 일으켜 세운 러시아의 경제가 제재를 통해 입을 피해는 계산이 불가능하다. 러시아는 핵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군사강국이지만, 경제면으로 보면 에너지와 천연자원에 과도하게 의존도가 높다. 심지어 국내총생산(GDP) 면에서는 한국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이다.
러시아는 예상된 서방의 경제제재를 중국의 협조를 통해서 돌파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경동계올림픽 때 푸틴은 러시아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하는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은 현재까지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세계적인 반전여론에 밀려 중국의 태도는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곧 중국이 러시아를 ‘손절’ 할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자칫 러시아 편을 드는 것이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실패가 중국과 북한에 주는 영향에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중국의 대만복속의 야망은 큰 타격을 입게 생겼다. 침략전쟁을 일으킨 쪽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가를 보는 것은 중국 지도부에 큰 교훈이 될 것이다. 북한 또한 이러한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떠받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변화는 현재 국제사회가 촘촘하게 엮어 놓은 대북경제제재를 벗어날 수 있는 옵션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첫째는 힘이 없고, 함께 싸울 동맹이 없는 나라의 운명이다. 둘째는 중국, 러시아와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와 이웃하고 사는 것의 위험성이다. 이와 같은 공감대 확산은 북한에 대한 유화적 접근을 시도했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새로운 정부가 국민적 저항 없이 폐기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코리안 드림'과 우크라이나 사태
우크라이나 사태는 어쩌면 우리에게는 통일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러시아의 몰락은 한반도 지정학을 크게 바꾸는 대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주도적으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하느냐에 달려 있다.
필자는 '코리안 드림'의 관점에서 이번 사태에서 얻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비극의 출발점은 국가정체성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원래 국가가 아니며, 우크라이나에 사는 주민들은 같은 슬라브민족이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는 신 나치주의 세력이며, 부패한 범죄집단이라고 이번 전쟁의 명분을 삼았다. 한마디로 우크라이나는 나라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크라이나는 어떤 국가를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소련으로부터 분리 독립됐다. 오렌지혁명(2004)을 통해 친러정권에서 러시아를 혐오하는 친서방정권이 들어섰고, 유로마이단(2013)시위와 같은 극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국가는 분열되었고 민족적 갈등 속에 유혈사태가 지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반러시아 정권의 NATO 가입 시도는 러시아 안보의 위협으로 해석되었고 이번 전쟁의 명분이 되었다.
이러한 사태가 통일을 목표하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통일을 통해 어떤 나라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비전이 불분명하게 되면 그것은 주변국가의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고, 심지어 전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저 통일을 통해 한반도 전체에 친미국가가 수립되고, 단순히 주한미군이 중국과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는 형태의 통일로만 인식된다면 주변국가들의 동의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통일이 우리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고 주변국가들을 소외시키는 것이어도 안된다. 통일 이후 한반도의 모습이 주변 국가들에게 어떠한 안보적, 경제적 이익이 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수립해야 한다.
지난 70년간 남북한은 서로 다른 체제를 꿈꾸면서 한국인들의 공통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남한 사회만 보더라도 이념을 둘러싼 정치적 분열은 우리 사회를 양극화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은 요원하다. 이데올로기의 망국적 대립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민족 공통의 정체성을 찾고, 공통의 미래 비전을 수립하는 것은 매우 긴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꿈꾸는 통일된 국가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분명해야한다. 그래야만 통일은 우리 민족 모두의 일이 되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홍익인간의 이상을 중심으로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나라이면서, 주변국가에 평화와 경제적 번영에 이익을 주는 나라가 된다는 코리안 드림의 비전을 그 어느 때보다 세계 앞에 전달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가 왜 코리안 드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 글 / 서인택 (한국GPF대표·코리안드림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