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러시아는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하는 초강대국, 소련이 되어 거의 반세기 동안을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는 국가였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세계와 치룬 냉전에서 패배했고, 1991년 해체의 길에 접어들었다. 과거 소련의 지배를 받던 동유럽과 아시아의 위성국가들은 모두 독립되어 각자도생의 길을 가고 있다. 대제국의 영광을 경험하다가 한순간에 후진국가가 된 러시아 국민들의 상실감은 매우 큰 것이었다.
푸틴은 이와 같은 러시아 국민들의 상실감을 파고 들었다. 무기력한 러시아를 강력한 국가로 만들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높은 인기를 끌며 22년간 장기집권을 했다. 러시아는 과거와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풍부한 에너지자원을 활용해서 강국으로 성장했다. 러시아를 위협하는 체첸을 군사적으로 응징하여 복속 시켰고, 조지아를 압도적인 무력으로 굴복시켰다. 그리고 2014년 크림반도를 별다른 저항없이 강제병합 시켰다. 이와 같은 푸틴의 행보는 러시아 내의 높은 지지도, 그리고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자신감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지난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다. 유럽 최빈국인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처럼 보였다. 엄청난 전비와 희생을 치르고 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 겨우 빠져나온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그리고 경제적 손실을 무엇보다 걱정하는 유럽국가들이 소극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미국과 함께 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이 자신의 편에 서서 서방의 경제제재를 무력화 시켜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판단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크라이나의 예상치 못한 저항은 전쟁을 교착상태에 빠뜨렸다. 러시아 군대는 그리 강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전쟁은 잠든 유럽을 깨웠다. 이제까지 안일했던 유럽국가들이 경제 보다 안보가 우선이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더 나아가 전 세계가 러시아는 믿을 수 없는 국가라는 인식의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미국은 군사적인 방법 외에도 러시아를 괴롭힐 수 있는 무기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손실을 감수하며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러시아인들은 패닉에 빠졌다. 루블화 폭락과 러시아 국가부도는 서막에 불과하다. 과연 이것은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러시아인들을 대량학살하는 부패한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우크라이나인들을 해방한다는 푸틴의 전쟁 명분은 그 빛을 잃었다.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에 의해 불타고 있는 도시들과 그 안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민간인들의 모습이 세계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다. 푸틴의 침략전쟁을 성토하는 대열에 전 세계가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열에 러시아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푸틴은 이미 실패했다. 그의 실패는 러시아인들을 오랫동안 고통가운데 빠뜨릴 것이 분명하다.
푸틴이 이렇게 자살공격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마도 자기 나라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한다. 과거 화려한 소비에트 시대가 어떻게 열렸는지 만 관찰했더라도 이토록 무모한 침략전쟁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후진국인 농업국가 러시아가 소련이라는 대제국으로 탄생된 것은 레닌이 일으킨 볼셰비키혁명(1917) 덕분이다. 러시아는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고, 주변국가들에게 공산주의 혁명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노동자 농민의 천국을 이룬다는 마르크스주의는 소련의 강력한 무기였다. 소련의 경제적-군사적 하드파워가 뒷받침 된 상태에서 공산주의라는 소프트파워는 그 위력을 발휘했다. 제국주의와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자리에 봉건적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공산주의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에서 이들의 협조가 아니었다면 소련이라는 제국은 결코 탄생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러시아의 과거 영광은 이념과 비전이 탄생시킨 것이다. 이 이념과 비전이 거짓된 약속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러시아의 영광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푸틴의 러시아는 어떤 소프트파워를 가지고 있는가? 푸틴이 주창하는 러시아 민족주의는 주변국가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가? 주변 국가들에게 어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가? 필자가 아는 한 전무해 보인다. 하드파워 만으로는 결코 세계의 강자가 될 수 없다.
푸틴이 증오하는 미국도 문제가 많은 나라이다. 그가 증오하는데는 분명 타당한 이유도 존재한다. 하지만 설령 미워하는 적이라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미국이 왜 초강대국인가? 그것은 미국이 자유세계의 중심국가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초강대국이기 때문에 자유세계의 중심국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군사력과 경제력 때문 만이 아니다는 뜻이다.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것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소프트파워 때문이다. 미국이 주창하는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가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우방이 되는 것이 경제적으로 안보적으로 좋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래서 미국에는 동맹 국가가 많은 것이다. 우크라이나도 기를 쓰고 그 동맹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가 어떤 비전을 추구하느냐는 통합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미국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다양한 이민자들에 의해 건국된 유일한 나라이다. 그런 미국이 분열의 길을 걷지 않고 초강대국이 된 것은 어쩔 수 없이 올바른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다민족국가인 미국이 민족주의를 선택했다면 그것은 곧 망국의 길이었기 때문에 미국에게는 하나의 선택지 밖에 없었다. 즉,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길 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신념을 국가건설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미국은 독립에 성공했고, 이 비전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을 중심으로 연방국가가 되었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번영을 일구어냈다. 이러한 미국의 성공을 아직도 많은 나라들은 동경하고 따라 하려고 하고 있다. 비록 미국이 완벽한 나라는 아니지만. 미국이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스스로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또 전 세계로 확대하고자 한다면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은 지속될 것이다.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통일을 이룰 것인가? 남한의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의 우위만 가지고 통일이 가능한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드파워이다. 하드파워 만 가지고는 우리의 목표를 성취할 수 없다. 북한을 움직이고, 국제사회를 설득해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프트파워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비전을 의미한다. 통일을 통해서 어떤 나라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비전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과거 소련이나 미국처럼…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창하는 코리안 드림이다.
코리안 드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파워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정신은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지내온 우리 민족의 공통의 이상이며, 우리의 정체성이다. 통일은 홍익인간 정신을 구현하는 과정이다. 홍익인간을 실현한 새로운 나라는 우리 민족만이 아니라, 주변국가와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하는 나라이다. 이상적으로 들릴 지 모르지만, 모든 문명은 이상을 토대로 만들어 진다. 한국은 문화창조력 면에서 세계 최강이다. KPOP과 한류는 지금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다. 이 문화창조력에 우리의 것을 더하면 끝이다. 2022년 다시 시작하는 원코리아글로벌캠페인에 거는 기대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의 문화창조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원한다.
- 글/ 서인택 한국 GPF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