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기고] 21세기 지정학과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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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1세기 지정학과 한반도

김백산 지구촌평화연구소 대표
기사입력 2021.10.0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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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해양의 경계선에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은 보는 시각에 따라 긍정, 부정 등 양극단으로 갈린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한반도가 대륙과 해양 문명의 교량 역할을 하여 새로운 통일 문명을 창조할 수 있는 입지적 여건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반대로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세력이 충돌하는 접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주변 강대국들의 침입과 간섭에 시달려 왔다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의 이러한 지리 구조는 축복인 동시에 재앙적인 측면을 모두 가진다. 한민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900여 회가 넘는 외침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 가운데도 한반도 구성원은 남방계와 북방계 민족이 골고루 섞여 있다. 또 대륙과 해양 문명이 교차하고 전파되는 가교 역할도 한 것도 사실이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의 하드파워가 충돌한 곳이었지만, 소프트파워는 상호 교류 및 융합이 된 곳이기도 하다. 하드파워 측면에서 대륙과 해양 세력으로부터 지속적인 침탈을 받아 온 것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주변국에게 사활적 이해관계를 제공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 예로 구한말 대한제국이 열강의 식민지 쟁탈 전쟁 속에서 속절없이 희생된 것은 모두 지정학적 이유에서 비롯됐다. 

 

19세기 해양세력이며 패권 국가인 영국은 러시아가 시베리아횡단철도 부설을 계기로 부동항을 찾아 동북아시아로의 진출을 꽤 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과 동맹을 맺고 서로 협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국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하고 미국 또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 행사를 묵인했다.  

 

100년이 더 지난 지금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은 남북이 분단된 것 외에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한반도 주변을 둘러싸고 국가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갈등과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자본과 공산으로 대립하고 있어 보이지만 이면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역학 관계가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지정학은 체제와 이념을 초월하며, 마치 운명처럼 한반도에 비극적 역사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전략가 브레진스키가 그의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한반도는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지정학적 핵심 지역임에 틀림없다. 미소 냉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미•중 패권 전쟁 시대에도 한반도는 양대 세력에게 지정학적 핵심축이다. 모두가 한반도에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대륙 세력이 한반도를 접수하면 해양세력의 패권이 위협받고, 해양 세력이 한반도를 접수하면 대륙 세력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이것은 한반도가 세계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축이 되는 지역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은 국방백서에서 한반도를 동북아 안보의 린치핀으로 표현했다. 린치핀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로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고 유라시아 대륙에 미국의 힘을 직접 투사할 수 있는 핵심 지역이라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지정학적 운명은 한반도에 자리 잡고 있는 한민족의 선택에 의해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다.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한반도가 어떠한 비전과 이념으로 통일되느냐에 따라 동북아는 물론 세계의 운명이 결정된다. 21세기 미•중 패권 전쟁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더욱 가중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는 이미 세계 문제가 되었고, 세계 인류가 앞으로 어떤 가치와 이념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가 된 것이다. 

 

인류의 진보는 인류 보편가치인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와 법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중국과 북한을 비롯한 유라시아 대륙의 권위주의 독재 국가들은 이러한 흐름과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성의 차이는 문명의 충돌을 격화시키고 세계적 갈등과 분쟁을 심화시킨다. 

 

지정학은 이념을 초월한다는 고전적 시각을 넘어서 이제는 올바른 이념과 가치가 지정학적 운명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 건설을 위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올바른 비전은 현재 삶의 지표이자 미래에 어떤 세계를 건설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이 세계의 흐름과 동떨어져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하고 있다. 북한 또한 3대 세습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담보로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무뢰한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는 인류 보편적 상식으로 결코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러한 사실만을 놓고 보았을 때 우리가 선택할 길 또한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반도의 선택은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와 법치의 실현 등 인류 보편 가치의 실현 방향과 일치해야 한다. 한반도가 인류 역사 진보의 핵심기지가 되어 아직도 권위주의 독재 체제하에 고통 받는 수많은 인류를 구원하는 주춧돌이 돼야 한다. 마침내는 대륙과 해양 문명의 충돌을 극복하고 이 두 문명의 장점을 결합하여 새로운 통일 문명을 창조하는 이상적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한반도가 대륙과 해양 문명의 교량 역할을 넘어 새로운 문명이 태동하는 지역이 되는 것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한류 문화의 붐은 한반도가 이러한 통일 문명의 발흥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민족이 가야 할 길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건국정신이다.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평화와 통일의 문명을 창조하는 주체로서 한민족은 섭리사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한계를 뛰어넘을 힘의 바탕이 될 것이다.


김백산 지구촌평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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