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특별 기고] 공감을 넘어 충격으로... 제주 세미나는 그야말로 ‘혁명’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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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공감을 넘어 충격으로... 제주 세미나는 그야말로 ‘혁명’ 같았다

최노석 경향신문사우회 회장
기사입력 2021.07.2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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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노석 경향신문사우회 회장

 

친구 따라 제주도로

 친구 따라 강남 간 형국이었다. 강남 아닌 제주이긴 했지만.
그저 “한번 와 보라”는 이상진 회장의 말에 이끌려 여행 가방을 챙겨 제주행 비행기를 탔을 뿐이었다. 정말 그것뿐이었다. 처음엔 그랬다.


통일 문제에 관한 한 누구보다 자신 있는 나였다. 1989년 11월 11일 동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 날, 서베를린 찰리 포인트 미군 검문소 앞에서 잉크 대신 눈물로 기사를 송고했었다. 또 그 사건 전후로 얼마나 많은 통일과 관련된 기사를 썼던가. 그리고 동유럽 격변 취재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동유럽 각국으로 숨어들기도 했었다. 그러므로 ‘2021 LAKU 중앙임원 제주 워크샵’ 주제가 한반도 통일 문제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좀 더 차분하게 서 이사장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전 준비. 맞다. 제주로 떠나기 전에 조금만 사전 준비를 했더라도 그렇게 맥없이 당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나는 전혀 무방비 상태에서 서 이사장의 강력한 라이트 훅을 맞고 그냥 나가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KO패를 당한 것이다.  

그랬었나? 그랬었구나! 
 2021년 4월 22일과 23일에 걸쳐 진행된 서인택 이사장의 강의 내내 나는 공감과 충격 사이를 넘나들었다. 독일 통일을 가능케 한 세계적인 힘에 대한 총체적인 사실을 접하면서 통일 문제 전문가연 했던 나의 자존심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야 서 이사장의 강의 내용에 고개만 끄떡이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팩트들과 서 이사장의 강의 내용을 일일이 겹쳐놓고 검토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엄청난 숨겨진 사건들이 서 이사장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도 들어본 적이 없던 것들이었다. 그 후에도 서방 언론 어디에서도 깊숙하게 거론되지 않던 것들이었다.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문 박사의 저서, ‘코리안드림’에서 속속들이 밝히고 있었다. 서 이사장은 그 사실을 중언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랬었나? 그랬었구나!라고 말할 뿐이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독일 통일에서 보여준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설명이었다. 

 서 이사장은 독일 통일을 레이건 미국 대통령 시절, 소련의 심각한 경제난을 확인하고 소련과의 군비경쟁을 편 미국의 정책에 주목했다. 이른바 ‘스타워즈’를 통해 미국의 군비 증강 정책을 뒤쫓으려던 소련이 경제 파탄으로 독일이 통일의 찬스를 얻게 되었다는 분석이었다. 물론 많은 서방 언론도 스타워즈를 독일 통일의 기점으로 보고 있었지만, 미국이 통독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했느냐는 이날의 강의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미국이 서독을 설득해 동서독 통일로 인해 45만 동독 주둔 소련군이 철수하게 될 경우 주둔군의 은퇴자금을 대도록 한 일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로 인해 통독의 가장 큰 장애물일 수 있었던 소련의 지원을 받아낼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이런 자신감에 힙입은 미국의 레이건은 동서독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2년 전, 동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이렇게 연설했던 것도 나는 알지 못했었다.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장벽(베를린 장벽)을 허세요!” 그러고도 막상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던 날, 레이건은 몸을 숨긴다. 봉괴 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통독을 위한 미국의 치밀한 계획이 섬뜩할 정도였다.


 두 번째는 미·중 패권전쟁이 군사적, 경제적 전쟁이 아닌 ‘가치’ 전쟁이라는 분석이었다. 미·중은 확연히 다른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공존이 불가하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수없이 끄떡였다. 내가 몰랐던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서 이사장의 관련된 강의를 들으면서 종교의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결국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럴 경우, 독일처럼 우리도 통일 기회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서독처럼 한국의 국력이 신장될수록 한국의 통일이 동아시아 지역 평화에 절대적이라는 점을 한반도 통일을 반대하는 국가들에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 보여주었듯이 미국조차도 우리로부터 필요한 것이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세 번째, 그것은 그 이튿날 계속되었던 ‘코리안 드림 실현, 100년의 대장정’이란 강의에서 알게 되었던 문선명 총재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놀라운 헌신이었다. 만일 그날 강의에서 문 총재에게서 통일교만 제외해 버린다면, 문 총재 한 개인의 통일에 대한 열정은 한국민 전체를 통털어도 가장 크리라는 생각에 머리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의 통일전략은 얼마나 치밀히며 독창적인지, 놀랍기 그지없었다. 미국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해 한국의 한 목사가 ‘워싱턴 타임즈’라는 신문을 창간해 선거에 개입한 일을 들으면서 간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의 목사 한 분이 단신으로! 이건 투사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 분명했다. 아니면 돈키호테? 거기에다 소련까지 건너가 고르바초프를 만나 종교자유를 요청하고, 소련 대학생 3,000명을 개인 경비로 자유주의 국가 미국에 연수시킨 일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나 통일하라고 윽박지른 대목에 이르면, 정신이 아득할 정도이다. 무슨 배짱이 있어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개신교 장로다. 이 강의를 들으면서 그동안 문 총재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없이 피상적으로 반대해 왔던 점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날 나는 힘 닿는 데까지 문 총재에서 문현진 박사로 이어지는 통일 운동에 헌신하고자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6월 24~26일 제2차 코리안 드림 제주 세미나에 언론인 5명을 불러 함께 참여하는 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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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한국언론문화포럼’ 재점화
언론인 동료들을 세미나에 초청했다. 그렇게 심의표 전 KBS 부산총국장, 최영재 자유일보 사장 등 다섯이 나의 권유로 서인택 이사장의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나처럼 현장에서 뒤집어졌다. 심 총국장은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온 나와 세미나 후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KBS의 남북방송교류사무소 소장을 맡아 북한을 수십 차례나 방문해 취재할 만큼 통일에 대한 남다른 경험을 소유한 자다. 


 또 1인 방송국을 운영하고 자유를 기치로 한 자유신문의 젊은 사장 최영재는 K대학 학보사 기자 시절 PD계열 학생운동을 한 그쪽 분야 핵심적인 인물이다. 그 역시도 이날 세미나에서 큰 감동을 받고 자신의 태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서 이사장의 강의에서 한 점 어긋난 논리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 그를 변화시킨 원동력이라고 했다. 

 결국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지난 2013년 5월 창설 이후 몇 년간 멈춰선 ‘한국언론문화포럼’을 재건하는데 마음을 모았다. 이 두 언론인 외에도 그날 참석한 전 매일경제 도쿄특파원 출신의 이웅환 국장도 기꺼이 동참하기로 약속했다. 세미나 하나가 통일지도자총연합이란 유서 깊은 단체의 중요한 부분을 새롭게 가동시키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그래도 남은 과제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통일에 대한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다. 너무 성급할지는 모르지만, 현재 진행 중인 미·중 패권전쟁이 한반도 통일의 시발점일 수 있다는 느낌이다. 미국이 소련과의 군비경쟁을 통해 소련을 고사시킴으로써 ‘페레스트로이카’를 유도해 냈다면. 미·중 가치전쟁으로 인해 중국의 퇴조가 이루어질 공산도 점칠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콧방귀를 뀔 소리일 수 있겠지만, 당시 미·소군축전 당시 소련이 그렇게 급속히 무너지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누구도 없었던 점을 기억한다면,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미·소군축전 당시 소련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가 몇 기나 되었을까? 수천 기가 넘는 그 엄청난 핵무기 한 발 쏴보지도 못한 채 공산국가 종주국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에 의해 공산당이 해체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겪었다.

 여기에 한반도 통일이 불안한 동북아정세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확신도 점차 커지는 추세다. 지금처럼 남북한이 대치되어 일촉즉발의 위기를 겪어야 하는 상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길은 한반도에 영구적인 민주국가를 건설하는 일이다. 한국은 이를 주변 국가에 설득하며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경제적 국력을 매년 상승시켜나가고 있다. 이는 서독 국력이 45만 명의 독일 주둔 소련군에게 퇴직금을 줄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거기에다 현재의 미 바이든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얼마나 큰지는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과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은 사례가 잘 보여준다. 특히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국은 미국과의 미사일 문제, 원자력 협력, 반도체 협력, 그리고 더 나아가 엄청난 대미투자가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 때와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제1차 제주 세미나 이후 불과 3개월여, 나는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겪었다. 특강에서 제시하는 통일 한반도의 비전은 공감을 넘어 충격이었다. 어쩌면 한국의 존재가 이미 통일을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평화통일을 향한 더욱 절실한 때를 맞고 있다. 더불어 한반도 통일에 대한 나의 감각 또한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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