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기행문] 가야 역사에서 발견한 문명 교류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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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가야 역사에서 발견한 문명 교류의 흔적

2021 춘계 코리안드림 역사기행
기사입력 2021.03.3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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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고분.jpg
대가야 고분 내부 모습

 

가마.jpg
가야 기마 무사 모형물

 

2021 춘계 코리안드림 역사기행이 성공리에 마쳤다. 이번 기행은 ‘가야 역사와 문화, 고대 일본과의 교류 이해하기’를 주제로 3월 26일부터 2박 3일간 진행됐다. 코리안드림역사재단(준)이 주최하고 글로벌평화사상연구소가 주관했다. 

 

그동안 가야 역사는 잊힌 역사와 같았다. 우리 민족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했지만, 신라에 복속돼 사라진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실제로 가야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에 비해 알려진 게 많지 않은 편이다. 때문에 이번 역사기행 참가자들에게 가야 역사기행은 다소 신선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첫날 경남 고령 대가야 박물관을 시작으로, 기행은 대가야 고분군, 고천원 공원, 창녕 비화가야 송현동 고분 방문으로 이어졌다. 대가야 박물관과 고분군에서 본 수많은 유물은 가야 시대의 찬란했던 문화들을 보여줬다. 정교한 토기와 장신구, 철제 병장기, 순장의 풍습 등이 특히 인상 깊었다. 전시된 유물들은 오늘날 그대로 재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해 보였다. 삼국시대 고분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순장의 현장을 목격하면서는 충격을 받았다. 가야 사람들의 장례 풍습에서 내세에 대한 갈망이 녹아있었다. 동시에 지배와 피지배라는 뚜렷한 계층 사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가야 유적지에 특별히 인상이 깊은 것 중 하나는, 가야대학교 안에 위치한 고천원 공원이다. 고천원 공원은 한반도와 일본을 연결하는 인적, 문화적 교류의 근원지다. 한국과 일본 역사 학자들 중에는 고대 한국과 일본이 교류했던 근원 지역을 가야로 보고 옛 가야 땅에 해당하는 지역에 기념비를 조상했다고 한다. 고대 일본인에게 가야에서 건너온 한반도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보다 발달된 문화와 문명을 전수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후세에 알리고자 신화 형태로 기록을 남겼다. 당시 일본 토착민들에게는 한반도의 가야 지역이 금은보화가 충만한 이상향처럼 보였을 지도 모른다.

 

이번 역사기행의 해설사 역할을 맡은 글로벌평화사상연구소 윤정하 대표는 동북아시아 지역 건국 신화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천손강림 신화를 소개하고 그 줄거리가 각 지역마다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단군 신화와 비슷하게 가야 건국 신화와 일본의 건국 신화도 천손강림 신화의 맥락을 띄고 있다고 했다. 천손강림 신화는 하늘의 신이 지상에 아들을 보내고, 지상의 여자와 혼인하여 자손을 낳고, 그 자손이 나라를 건국하여 통치하는 내용이다. 천손강림 신화로 연결되는 공통점으로 볼 때, 그 시대 사람들이 바다 건너 서로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한반도의 우수한 문화가 일본에 전파돼 고대 일본 문명을 개화하는데도 큰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둘째 날에는 함안 박물관과 말이산 고분군을 방문했다. 함안 가야 역사 박물관에 광개토대왕비 모형물을 발견했다. 그 광개토대왕비 비문에는 아라가야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는 일부 일본 역사학자들에 의해 임나일본부설(일본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 가야 지방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근 200년간 한반도의 남부를 지배했다는 설)의 근거로 사용됐다고 한다. 임나일본부설은 가야 시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점령해 식민지로 삼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일본 학자들은 이 학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아라 가야 지역 고분들을 도굴하여 증거를 찾기 위한 노력을 진행했다. 그러나 일본 학자들이 가야 고분들을 발굴하면 할수록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들은 나오지 않고 그 반대의 증거들만 나왔다고 한다.

 

말이산 고분군에는 헤아릴 수 없는 고분들이 널려 있었다. 이 모두가 가야 역사를 품고 있는 보물들이라니 감탄사가 나왔다. 마치 신라 경주에서 발견된 고분 수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고분들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역사기행 일행은 이어 가야가 시작된 본거지, 김해로 향했다. 김해는 김수로왕이 가야를 세운 곳이다. 김수로왕이 세운 금관가야는 초기 가야의 중심지로서 김수로왕의 탄생 신화와 인도 공주 허황옥에 대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또 대성동 고분군과 김수로왕릉, 구지봉에 이르는 답사에서 인도와 가야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교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인도 공주 허황옥이 김수로왕에 시집와 자손을 낳았다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로 증명된 바는 없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까마득히 멀리 있는 나라들과 해상으로 교통하고 무역을 하며 살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셋째 날은 부산 복천동 고분군을 시작으로 복천 박물관을 관람했고, 포항으로 방문하여 연오랑세오녀 테마 공원을 답사했다. 연오랑세오녀 설화는 삼국유사에 나온다. 신라 사람인 연오와 세오가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자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는데, 세오의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자 다시 빛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연오랑세오녀 설화는 일찍이 우리 민족이 일본 땅을 개척하여 통치자가 되고, 서로 내왕한 문화적 교류를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23일간의 코리안드림 역사기행은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이 이웃 나라와 교류하고 문명을 개화시킨 발자취들을 찾아가는 여행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나아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거나 정복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며, 우수한 문화를 전파해 이웃 국가의 문명을 꽃피우는 데 도움을 주는 박애주의 정신이 한민족의 발자취 속에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우리 민족 정체성이 고조선을 세운 단군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정신에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널리 인간과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는 목표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문화를 통해 실현시켜왔다. 그리고 홍익인간 정신 속에 내재돼 있는 이상국가와 세계를 향한 한민족의 열망과 염원은 이제 코리안드림으로 형상화돼 있다. 이번 가야 역사 기행은 보편적 인류가치와 상통하는 홍익인간 정신이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체험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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