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5일 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故백선엽 장군이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6.25전쟁의 격전지였던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북진 때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태극기를 꽂은 전쟁영웅이지만 친일논란이 불거지며 최근까지도 파묘 논쟁이 일고 있다. 매년 6월이면 대전현충원을 찾고 있다는 이기홍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대전본부 상임대표는 “이런 분들을 예우해주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60만 대군이 어떻게 국가에 충성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대표는 1976년 소위로 임관해 30년 군생활 후 중령으로 예편했다. 그의 증·고조부는 1.4후퇴 때 황해도 수완에서 내려온 실향민으로 북한에 토지문서가 집안 대대로 남아 있을 정도로 이 대표의 삶과 가족사는 한반도 분단 역사에 깊게 얽혀있다. 전역 후에도 현재까지 대전지방보훈청 제대군인지원센터 멘토 회장, 육군3사관학교 대전·세종·충남 총동문회 책임고문을 맡고 있는 그는 故백선엽 장군의 이슈와 더불어 최근의 남북관계를 바라보며 “먹구름이 밀려오는 듯하다”고 묘사했다.
매년 9월 28일은 서울 수복의 날로 6.25전쟁 발발 후 3일만에 함락된 서울을 3개월만에 재탈환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올해는 특히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더 의미가 있으며 서울 국립현충원 인근에는 서울수복기념관도 건립 중에 있다. 유엔군의 파병 결정과 실제 전투 투입은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기에 사실상 인천상륙작전을 통한 서울 수복 과정에는 한·미 연합군의 활약이 컸다. 이 대표는 “한미 동맹을 혈맹 관계라고 하는 이유”라고 설명하며 최근의 한미관계 변화에 대한 우려도 드러냈다.
인터뷰·글 허경은
“한미동맹 와해 우려돼”
이 대표는 장교로 임관하는 순간부터 거의 전시상태였다고 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1976년 8월 18일 오전 11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유엔사 경비병들이 북한군이 휘두른 도끼·쇠망치 등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 터진 직후였기 때문이다.
“도끼만행 사건 발생 이틀만인 1976년 8월 20일 소위로 임관해 전방으로 가게 됐습니다. 당시 데프콘2(전투준비태세)가 발령되어 준전시 상태였기에 손톱, 발톱을 깎고 집에 유서까지 보내면서 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죽어서도 싸운다는 결기였던 것 같네요. 그러나 모든 군인들이 그러할 것입니다. 나 자신보다는 국가를 위하는 마음과 희생이 이 땅의 평화를 만드는 것이죠. 평화는 말로만 외친다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0.1%의 위험이라도 대비를 해야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열린 집권 공화당의 전당대회에서 해외 주둔 미군의 철수와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을 다시 한번 거론한 바 있다. 이로써 한미 간의 긴장 상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동맹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인데 최근 몇년 사이 한미 간에 신뢰가 무너진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2018년부터 북한과의 평화모드를 구상하고 이에 따라 전략을 취하면서 남·북·미는 물론 기존의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구도마저 무너져버린 상태입니다. 북한은 근본적으로 대남전략노선을 취하면서 한미동맹 와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지만 지난 2년을 되돌아보면 지속적으로 미사일을 쏘고 급기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일까지 감행했죠. 한국을 건너뛰고 미국을 직접 상대하면서 핵보유 인정과 군축협상 등을 노렸습니다. 혈맹인 미국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더욱 집중하니 한미간 신뢰관계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안보·통일교육 함께 추진해야”
이 대표는 전역 후 대학에서 전쟁사, 국가안보론 등을 가르쳤고 최근엔 대전 지역 내 초·중·고 학생들과 교류하며 종종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하고 있다. 대전현충원에는 천안함·연평해전 전사자 묘역도 조성돼있어 청소년들에겐 중요한 교육현장이 되기도 한다.
“대학생, 청소년들을 가르쳐보면 분단상황에 대해 잘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독립운동가나 참전용사들의 경우 어린 학생들에겐 70년, 100년 전과 같이 멀고 먼 과거의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는데 천안함·연평해전 사건은 우리 주변에 있을 형·오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좀 더 가깝게 현실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보교육에는 반드시 통일 교육도 수반되어야 합니다. 최근 북한 상황이 불안정한데, 북한이 무너진다고 저절로 통일이 되는 게 아니거든요. 아무런 준비없이 있다가 갑자기 북한이 붕괴하게 되면 또 다른 혼란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대전지역 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통일교육이 진행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가고 싶습니다.”
최근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통일천사) 대전본부 신임 상임대표를 맡게 된 그는 지역 내 조직강화와 더불어 통일 강사 양성, 청소년 통일 교육 등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보교육만을 강조하다보면 통일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안보와 통일 교육을 동시에 추진하여 올바른 국가 비전과 제도를 기반으로 한 통일 운동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통일, 행복으로 가는 길”
강인한 군인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행복’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이 대표는 통일천사와 더불어 행복문화실천운동본부(행실본) 회장도 겸하고 있다. 배나섬(배려·나눔·섬김) 운동을 확산하기 위해 지난 2017년 직접 설립한 단체로 산하에 행복문화교육원, 문화예술단을 두고 다양한 지역 봉사활동을 전개해가고 있다.
“군에서는 국가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막상 전역하고 사회에 나와보니 나 자신과 가족, 그리고 지역 사회에 대해 많이 모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제는 사회를 위한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행실본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현재는 대전을 기반으로 140여 명의 회원들과 함께 지역 환경정화와 요양원·고아원 방문 봉사 등을 해가고 있고 점차 조직을 확대해 갈 계획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게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것도 결국은 우리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이고, 나라를 위해서는 사회가, 사회를 위해서는 내 가정부터 행복해져야겠다는 마음으로 주변부터 돌아보게 됐습니다. 사실 통일이란 문제도 거대해 보이지만, 내 가정에서부터 자녀와 자유롭게 대화하고 교육이 이뤄진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당장 행복하냐고 묻는 질문에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답한 그는 최근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때를 이용해 오히려 가족들과 따뜻한 밥 한끼 더 나누면서 서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통일 운동에 많은 시민들이 동참해주길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통일 후 어려운 점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국경이 변경돼 중국과 마주함으로써 생기는 외교적 갈등, 또 우리 내부의 내적 갈등이 발생하겠죠. 그러나 억압된 북한 주민들이 고통에서 해방되고 북핵 등의 위험요소가 사라지며 경제발전의 가속화도 가져올 것입니다. 통일 한반도의 모습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상상하면서 통일천사 활동에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