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동찬 작사·작곡가] “통일된 한반도, 세계 속 ‘넘버원’ 국가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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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작사·작곡가] “통일된 한반도, 세계 속 ‘넘버원’ 국가 될 것”

코리안 드리머
기사입력 2020.05.0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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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s.jpg▲ 김동찬 작사·작곡가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을 증명하듯 과거 어머니들이 작업할 때 주로 입던 일명 몸빼바지가 최근엔 냉장고바지란 이름으로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조금은 느리고 불편해도 레트로 감성이 좋다며 옛날에 쓰던 소품들로 꾸며진 카페가 SNS에서 핫한 셀피장소로 등장한다. 음악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트로트 열풍이 불기 시작해 ‘미스트롯’·’미스터트롯’(TV조선) 등의 프로그램이 종편채널 예능부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600곡 이상의 노래를 만든 김동찬 작곡가는 트로트가 끊임없이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와 생활 속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스터트롯 준결승에서 가수 장민호가 부른 남진의 ‘상사화’도 김동찬 작곡가의 작품이다. “상사화는 잎이 먼저 나고, 그 잎이 진 자리에 꽃이 핍니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어도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거죠. 사랑해도 서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애절한 마음을 부른 노래여서 상사화라 제목 짓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노랫말이 된다고 전한 김 작곡가는 ‘봉선화연정’(1988/현철), ‘사랑의이름표’(1998/현철), ‘네박자’(1998/송대관), ‘돌팔매’(1989/오은주), ‘신토불이’(1993/배일호), ‘둥지’(1999/남진) 등 수많은 유행가의 가사를 썼다. ‘히트곡 제조기’라 불리는 그가 이번엔 통일 노래를 만든다. 시대상을 노랫말에 접목해 희망을 불러온 그의 손에서 어떤 통일 노래가 탄생할지 기대가 모아진다. 

인터뷰·글 허경은 


일상이 노래가 되다

‘누구야 누가 또 생각없이 돌을 던지느냐 / 무심코 당신은 던졌다지만 내 가슴은 멍이 들었네’ 1989년 등장한 오은주의 ‘돌팔매’ 노래 가삿말이다. 경쾌한 멜로디의 사랑 노래라 생각하고 흥얼거렸던 이 노래가 사실은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곡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시 거리 곳곳에서는 돌들이 날아다녔어요. 여기저기서 돌팔매질을 해대니 그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유리창이 깨지고 물건도 망가져서 장사하는 게 여간 쉽지 않았죠.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생활고를 겪는 또 다른 이웃들이 주변에 있었습니다.”

간혹 그가 히트시킨 곡에서는 시대상이 엿보인다. 배일호의 ‘신토불이’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때 만들어졌다. 협상이 타결되며 수출 규모가 확대되었지만 쌀시장도 개방되어 농민들의 반대가 커 데모가 격렬했다. 김 작곡가는 이런 모습을 보며 국민들 스스로 우리 농산물을 자주 찾고 사먹으면 되지 않을까 하여 ‘우리 것이 좋은 것’이란 인식을 확산하기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다.

“아주 소소한 일상도 노래가 됩니다. 한번은 아내와 함께 낚시터에 갔는데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커플이 있더군요. 정 주고 마음 주고 사랑도 줬는데 이렇게 헤어지는 거냐며 싸우고 있길래 그걸 보고 아내와 마주보며 ‘당신도 잘해라. 가슴팍에 이름표 제대로 붙이고 다니면 저럴 일 없다’고 웃으며 대화했던 게 현철의 ‘사랑의 이름표’로 만들어졌습니다. 송대관의 ‘네박자’ 같은 경우는 술자리에서 탄생했죠. 간혹 클래식 하는 분들 중엔 대중가요 종사자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여 앉아 술 한잔 하다보면 다 똑같아지거든요. 너나 나나 다 거기서 거기인데 뭘 으스대나 싶어 반항심으로 쓴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명을 듣고 다시 들으니 '내려 보는 사람도, 위를 보는 사람도 어차피 쿵짝'이라는 가사가 더욱 귀에 꽂힌다. 그의 노래가 오랫동안 사랑받고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일상 속에서 찾아진 소재 때문일 것이다.

00s.jpg▲ KBS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247회 방영분의 김동찬 작사·작곡가 출연 모습 (출처=KBS '불후의 명곡' 화면 캡쳐)
 
“좌우 날개로 균형을 이뤄 날아가는 새처럼”

2015년부터 통일 비전을 확산하기 위해 시민 운동을 펼쳐온 원케이글로벌캠페인 조직위와 인연이 닿은 김동찬 작곡가는 올해 광복절을 기해 자신의 스타일로 만든 통일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언제나 생활 속에서 이야기 소재를 찾아온 그가 어쩌면 매우 무거울 수 있는 통일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 지 궁금해진다.  

“통일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 내부를 돌아보면 좌우의 대립이 너무 극렬합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가 되지 못하면서 북한 사회를 포용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한 마리의 새에 우리의 상황을 비유해 보고자 합니다. 새의 한 쪽 날개가 부러지거나 없다면 제대로 날아갈 수 없잖아요. 좌우 두 날개를 모두 펼치고 균형을 잡고 날아야 먼 곳을 내다보고 날아갈 수 있습니다. 극렬한 대립과 비난이 난무하고 상대의 날개를 꺾으려고만 든다면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포용력을 키우고 균형을 잡았을 때 통일도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 믿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에 이런 의미의 가사를 붙이고 있습니다.”

거의 작업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밝힌 그는 현재 이 노래를 부를 적합한 가수를 찾고 있다. 

“수많은 노래를 만들어왔지만 어떤 가수가 부르는가도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노래를 아이에 비유한다면 작곡가는 아이를 낳은 부모이고, 가수는 그 아이를 키우는 사람입니다. 가수에 따라 노래의 맛이 달라지고, 그 맛에 따라 노래의 생명력이 달라집니다. 아직 작업 중이지만 이 노래를 맛있게 불러줄 가수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는 “진정한 통일은 철조망 하나 치우는 게 아니다. 어떻게 마음을 먹는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분단이 너무 오래 되어 어떤 사람들은 ‘통일’ 소리만 들어도 염증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통일은 말(입)로만 해선 안되고 마음으로 해야 하고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현실적인 대비도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독일이 통일된 후에도 아직까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이뤄진 통일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지난 해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30년을 맞은 해였다. 사건 자체는 세계 역사에 감동과 환희의 날로 기록되었지만 지난 30년을 돌아본 전문가들은 ‘미완의 통일’이었다고 진단하고 동서독의 경제적 격차 해소까지는 앞으로도 20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김 작곡가의 말대로 통일은 철조망 하나 치우는 게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음악으로 아픔 치유하고 사랑 꿈꾸게 하겠다”

김 작곡가는 지난 2017년 칠순을 기해 <기똥찬 사나이 김동찬 '가요인생 50년'>이란 이름의 기념행사를 치렀다. 작사·작곡가로 기념공연을 여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KBS 대하드라마 음향 효과상'(1987·1999), '한국노랫말대상 노랫말상'(1990·1993), '대한민국 연예대상 작사상'(2000), '한국전통가요 작사부문 대상'(2007), '한국작가협회 가요작가의날 작가상'(2008), ‘대한민국전통가요 작곡상’(2019) 등 그의 화려한 수상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 그가 한국 가요 발전에 기여한 바가 컸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여의도 KBS홀에서 개최된 이 행사의 사회는 송해 선생이 맡았고 현철, 남진, 배일호, 오은주, 김혜연 등 한국의 대중가요를 이끌어온 대표 가수들이 대거 동참해 무대를 성대히 꾸몄다.

“잊지 못할 공연이었고 지난 가요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됐습니다. 그날 아내를 위해 만든 곡 ‘참 좋다’란 노래를 직접 무대에 올라 불렀는데 저를 비롯해 관객에서도 함께 눈물을 흘려 감동적이었습니다. 제가 항상 ‘한 폭의 동양화 같다’고 아내를 소개하곤 하는데 제 곁에서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03.jpg▲ 2017년 3월 22일 여의도 KBS홀에서 송해 선생의 사회로 열린 '김동찬 가요인생 50년 기념공연'에서 김동찬 작사·작곡가가 아내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김동찬 블로그)
 
가요인생 50년을 되돌아보면 김 작곡가의 인생은 모두 노래로 채워진 것 같지만 시대상을 담는 음악가답게 다양한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KBS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 김동찬가요연구소 대표 등 음악 산업 외에도 거붕그룹 거제백병원의 재단이사, 한민족문화협회 이사, 대한민국재향경우회 홍보대사 등 의료·문화·사회 분야의 다양한 직을 맡고 있다. 칠순이 넘어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꿈을 물었다.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지금까지 이뤄놓은 위상을 보면, 우리만 잘 살겠다는 욕심보다는 많이 나누고 좋은 것을 전파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국력이 신장되고 세계인들로부터 박수를 받는다면 그 또한 북녘 땅에도 전해져 우리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하나 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원 코리아’는 세계 속에 진정한 ‘넘버원’ 국가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길에 제가 만드는 음악이 아픔을 치유하고 사랑을 꿈꾸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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