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재성 영국 킹스톤시(자유민주당) 의원 / AKU영국본부 상임고문 / 전 재영한인회 회장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패닉에 빠진 가운데 4·15총선을 치른 한국의 상황은 외신을 타고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다. 탈북민 최초의 지역구 의원도 탄생하며 관심이 더해졌다. 반면 같은 시기에 북한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적이 묘연해지며 건강 이상설 혹은 사망설이 난무하고 있다. 그야말로 남과 북, 한반도 전역의 상황이 매우 혼란스럽고 불확실성에 놓인 형국이다.
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미칠 여러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은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통일을 현실적 문제로 체감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능성에 대해 모두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넘어 ‘통일되면 어떡하지?’라는 물음에 직면했다는 것은 어쩌면 '통일 이후'를 고민하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부분도 있다.
하재성 영국 자유민주당 의원은 "통일을 미리 경험할 수 있는 곳, ‘뉴몰든’에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유럽 최대의 한인 밀집지역인 영국 킹스톤시의 뉴몰든(New Malden)엔 한국, 북한 출신의 이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지난 2018년 영국 지방선거에서 킹스톤시 의원으로 당선된 하재성 의원은 정계진출 전까지 재영한인회 회장을 역임하며 탈북민을 포함한 한인 사회 결집을 위해 노력해왔다. 당시 두 명의 한인이 동시에 당선돼 화제를 모았는데, 재영 한인 60년 역사상 최초로 선출된 한인 정치인이란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남겼다. 하 의원은 지금의 한반도 정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인터뷰·글 허경은
“권익 신장 위해 시민의식과 정치참여 중요하다”
- 최근 21대 총선을 통해 태영호·지성호 등 탈북민 의원이 당선됐다. 이민자 사회에서 차별을 극복하며 선거를 치러봤기에 이들의 당선 소식이 남다르게 느껴졌을 것 같다.
“내가 소속된 영국 자유민주당의 이념은 자유주의와 친유럽주의에 바탕을 두고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 및 평등성을 존중하고 있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점에서 누구든 인종·언어·출신지역·성별 등에 따른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제도를 통해 후보자들은 자신의 소신을 펼쳤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탈북민들의 정계 진출은 우리 사회가 이제는 그만큼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탈북민들의 경험과 지식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한반도 평화 통일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이들의 능력을 어떻게 녹여내어 통일을 앞당기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꿀 것인가는 또 다른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 언어·민족이 다른 곳에 이민자로 정착하여 정계 진출하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영국으로 이주해 처음 거주했던 곳이 런던 중심에서 20km 정도 떨어진 킹스톤시의 뉴몰든이었다. 유럽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 곳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해 왔지만 영국 주류사회와 연계되기 보다는 대부분 한국인들만의 모임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민자 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재영한인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서는 주류 사회 진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류 사회로 나아가려면 우리 스스로 시민 의식을 키워 소속감을 갖고 적극적인 정치 참여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뜻을 함께 한 한인들과 모여 2012년 런던올림픽이 끝난 직후 ‘재영한인유권자연맹’을 만들었고 초대 회장을 맡게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정치 활동의 밑거름이 된 것 같다.”
“도전과 실천 정신...변화를 이끄는 힘”
- 본격적인 정당 가입과 선거 활동에 어려움은 없었나.
“정당에 가입하고 지방선거 후보에 등록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과 지지가 있었다. 자유민주당에 가입한 후 킹스톤 지역의 에드워드 데비(Ed Davey) 의원과의 면담을 통해 재영한인의 지방의회 진출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었다. 우리 유권자연맹 내부에서도 나를 후보로 선출해주어 힘을 받을 수 있었고 당내 선거캠페인 등에 적극 참여하며 영국 지방정치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2014년 선거에서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재도전하여 2018년 선거에서 당선됐다.”
▲ 2018년 영국 킹스톤시 지방선거에 출마한 하재성 당시 후보가 소속 정당(자유민주) 의원 및 후보·지지자들과 함께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 선거운동 과정이 한국과 비슷한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한국은 독특한 슬로건을 내걸거나 다수를 향한 거리유세가 많은 편이지만, 영국에서는 슬로건 경쟁 보다는 구체적인 정책안을 중심으로 홍보하는 편이다. 또한 한국과 달리 개별 가정방문을 통해 유권자를 직접 만나 대화하고 유인물을 배포하는 것이 허용되기 때문에 직접 주택가를 돌며 초인종을 눌러야 하는 다소 설레이면서도 도전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지지 정당이 다른 유권자를 만날 경우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민감한 국가 현안을 놓고 대화할 땐 논쟁이 번질때도 있어 어떤 후보들은 문 앞에 유인물만 놓고 가는 경우도 많다. 한번은 70대 할머니 한 분이 대문을 열어주며 직접 노크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후보를 거의 못봤다고 반색하시고는, 대화 이후에 나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혀주셔서 기뻤던 기억이 난다. 백인 중심 사회에서 소수인종으로 정치활동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오히려 이 점이 나의 잠재된 도전의식을 깨우고 힘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되었다.”
“통일 실현으로 진정한 자주독립국가 이뤄야”
- 영국 내 한인 커뮤니티 규모와 이들에 대한 인식은 어떤 편인가.
“2018년 기준으로 유럽 전체에 약 15만명의 한인이 있고 그 중 4만명이 영국에 있다. 1958년 3월에 재영유학생회가 결성된 것을 시작으로 재영한인의 역사가 2세대를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의료·법조계 등 전문직 진출도 많이 늘었고 K팝·영화 등 한류 확산에 따른 한국의 문화예술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영국은 축구, 골프, 럭비, 테니스 등 스포츠의 발원지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박지성, 손흥민 등 한국 스포츠선수들의 활약도 커 재영 동포들의 자부심이 되고 있다.”
- 동시에 탈북민의 숫자도 많은 것으로 안다. 또한 태영호 당선인이 과거 영국주재 북한공사로 있었던 바와 같이 종종 북한 고위직 관료들도 체류하는데 남북 주민들간의 교류 또는 마찰은 없는가.
“북한 동포들이 영국으로 오기 시작한 것은 약 15년 전쯤부터이다. 가장 많을 때는 1,200명 정도 있었고 현재는 700명 정도의 북한 동포가 영국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 중 90%가 뉴몰든에 거주하고 있다. 뉴몰든에는 이미 한국 동포들이 40년 전부터 식당, 슈퍼, 미용실 등 각종 편의시설을 운영하며 밀집해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 북한 동포들이 이 곳으로 오는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언어와 문화가 같기 때문에 편안함과 편리함을 느낄 수 있는 지역인 것이다. 뉴몰든에는 재영한인회와 탈북민협의회가 각각 결성돼있다. 서로 다른 체제에서 왔어도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다. 분단된 세월 속에서 겪은 문화적 이질감이 다소 있을 수 있지만 오히려 고향을 떠나온 ‘디아스포라’라는 동질감이 있어서인지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행사가 있을때 협력하거나 서로를 초대하며 어울리고 있다. 2018년 뉴몰든에서 출범한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영국본부의 김미순 회장은 남북한 동포들이 교류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이 뉴몰든 지역이 통일된 한국의 미래상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시범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자부한 바 있다.”
▲ 영국 뉴몰든에서 열린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통일천사) 영국본부 활동에 상임고문으로 참여하고 계시는데, 앞으로 한반도 통일 실현을 위해 시민들에게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통일천사 영국본부가 출범한 이듬해인 2019년에 3·1운동 100주년을 맞았다. 이에 통일천사가 주도해 뉴몰든 지역의 한인들과 함께 기념행사를 열게됐다. 60년 재영한인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 동포가 함께 협력해 행사를 치렀다는 점에서 세간의 큰 관심과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뉴몰든 통일선언문’에는 모든 인류는 스스로 존귀함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고 명시돼 있다. 우리 민족 모두가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100년 전 선조들이 외쳤던 자주 정신과 독립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란 말이 있다. 뒷 물결이 앞 물을 밀어내며 흘러가듯이 새 사람이 옛 사람의 자리를 교체하며 시대가 흘러간다는 뜻이다. 지금은 우리가 시대의 주역인 것 같아도, 곧 미래세대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 통일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과정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자세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면 우리 세대에 통일 실현이 더디게 이뤄진다 해도 미래 세대가 그 위에 꽃을 피우게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