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5일 베트남 후에(Hue) 티엔무사원을 방문한 '통일실천지도자 연수단'이 대형 베트남국기를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최근 관광명소로 급성장한 '다낭'...베트남전 당시엔 대한민국 청룡부대가 주둔하던 격전지
월남 패망 전후 발생한 베트남 난민 '보트피플', 이들의 정치망명의 탈출구 된 다낭항
공산화 이후 체제 한계 깨닫고 ‘도이머이(쇄신)’ 개혁·개방 추진...북한, 롤모델 삼을지 관심
세계사에 존재하는 전쟁과 분단, 통일의 역사는 한반도 통일 연구에 좋은 선례가 된다. 미국은 150여년 전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1861~1865)을 겪은 후 연방정부 역할을 강화하고 미 전역에서 노예제 폐지와 자유 민주주의 확산의 기틀을 마련하며 지금과 같은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의 자리에 올랐다. 독일은 30년 전까지 동서를 가르던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리고 전범국가란 이미지를 탈피,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이자 가장 영향력있는 EU 지배 국가 중 하나로 발돋움했다. 비록 아픈 역사와 많은 희생을 치뤘지만 이처럼 통일로써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주변 국가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선례들이 있기에 한반도 통일에 거는 기대도 큰 이유가 된다.
하지만 통일을 이루었다고 해서 반듯이 성공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베트남은 남(월남)과 북(월맹)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미국과의 전쟁(1960~1975)을 치렀고 ‘유일하게 미국에 승리한 국가’라는 자부심을 안으며 통일을 이루었다. 그러나 공산진영의 승리로 얻어낸 통일은 베트남 전역에 사회주의 체제를 확립시켰고 이후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변화를 꾀했으나 경제발전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장경쟁은 체제의 한계를 극복해내지 못했다. 최근 베트남의 빠른 성장률이 세계로부터 큰 호평을 받고 있지만 인구 1억, 평균 연령 31세라는 좋은 조건을 가진 젊은 국가임에도 1인당 GDP는 2,500달러에 불과하고 세계 경제 순위 141개국 중 67위(2019년 스위스 '세계 경제 포럼' 발표)에 머물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통일은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통일 이후 ‘어떤 국가를 이룰 것인가’가 중요하고 이를 위한 ‘비전 확립’이 선결되어야 함을 역사가 말해준다.
▲ 과거에 활발한 상업 교역도시로 번영하고 최근에는 세계적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베트남 중부도시 다낭.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한국 파병부대가 주둔하고 미군의 주요 공군기지가 위치해 있었다. 월남(남)·월맹(북)의 접전지였던 다낭은 월남 패전 후 정치적망명을 위해 보트에 몸을 실어 탈출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으며, 보트에 올랐다가 침몰한 수많은 '보트피플' 희생자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영흥사 내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있는 해수관음상이 세워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우리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을 바탕으로 ‘코리안드림’이란 한반도 통일 비전을 설파해 온 국내 최대규모 시민단체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이하 통일천사)은 국내에서뿐 아니라 세계 속의 선례를 찾아, 또는 반면교사로 삼을 역사적 문화유적지를 찾아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각계 주요 기관장 및 시민운동가들과 통일 비전을 공유하고 통일운동 실천결의를 다져왔다. 지난 11월 23일부터 27일까지는 베트남을 방문하고 베트남전 당시 한국의 파병부대를 포함한 남베트남군 진영과 미군의 주요 공군 기지로 활용되었던 ‘다낭’의 주요 유적지 등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행사에는 150여만 전·현직 경찰들로 구성된 '대한민국재향경우회'(이하 경우회)의 시도지역본부 회장단 30명과 통일천사 홍보대사, 주요 임원 등 총 36명이 참여했다. 연수 기간 중 이뤄진 특강에서 강영규 경우회 중앙회장은 ‘경찰의 뿌리와 역사’를 주제로 강의하며 경찰 역사가 우리의 독립운동사에 어떤 연관이 있으며 통일 국가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 강영규 재향경우회 중앙회장이 특강을 하고 있다.
강영규 경우회 중앙회장은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장정’ 제정에 의해 경무국이 설치되고 도산 안창호 선생이 내무총장을 맡아 백범 김구 선생을 경무국장으로 임명한 것이 대한민국 경찰 역사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하고 “역사는 항상 사회·종교·문화적 충돌 속에서 큰 흐름을 만들며 흘러왔고, 우리 선각자들은 그런 어려움과 외세로부터의 핍박 속에서도 더 큰 큰 그림을 그리며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등 계획과 실천을 추진해왔다.”고 강조했다.
▲ 서인택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공동상임의장이 특강을 하고 있다.
서인택 통일천사 공동상임의장은 강 회장의 특강을 이어 받아 “독립 운동가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우리가 앞으로 그려야 할 그림은 ‘코리안드림’이라는 통일 한반도 비전”이라며 “미국이 베트남전에 대하여 명확한 비전과 포괄적 전략 없이 접근했기에 실패하고 말았다. 베트남은 결국 통일을 이루었으나 공산화가 되었다. ‘어떤 국가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비전 합의 없이 막연히 통일을 이룬다면 어떤 미래가 도래할지에 대해 이번 연수를 통해 반면교사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베트남 연수에 참가한 재향경우회 임원들이 서인택 통일천사 상임의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지금은 인기 있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다낭이지만, 베트남전 직후인 60~70년대에는 정치적 망명자들의 탈출구로, 80~90년대에는 경제적 난민자들이 낡은 보트에 몸을 싣는 항구로 자주 이용된 아픈 역사도 서려있다.
조규학 경우회 해경회장은 “정치적 난민은 90년대까지도 이어졌다”며 재임 시절 겪었던 보트피플(베트남 난민)과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베트남이 공산통일된 이후 월남 진영에 있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정치 보복, 불이익 등으로 불안한 삶을 살다가 망명을 시도했다. 1989년 우리나라로 베트남 보트피플이 들어왔을때 정부 방침은 그들을 모두 돌려보내는 것이었고 이는 매우 비인도적 지시였다. 난민 중 하나가 이를 거부하며 자신들이 타고 온 배에 불을 질렀고, 위험해진 그들을 우선 구조한 뒤 상부 지시가 바뀌길 바랄 뿐이었는데 극적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기로 상부 지시가 번복되었다. 만약 첫 지시에 따라 망망대해에서 그들을 버리고 왔다면 모두 목숨을 잃었을 것이며 대한민국은 국제적 비난도 받았을 것이다.”고 상기했다.
▲ 연수 참가자들이 베트남 다낭의 주요 문화유적지를 견학하고 있다.
연수가 종료된 후 이종복 경우회 중앙회 이사는 소감문을 통해 "월맹(공산주의)에 의해 통일된 베트남이 사회주의체제 하에서 시장 개방을 통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자유·민주의 가치를 지켜내는 통일을 이뤄야 함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김황재 경우회 충남회장은 "베트남 연수를 통해 우리의 통일은 (전쟁이 아닌)민주적 방법으로 실현하고, 통일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통일천사는 한국 역사와 관계가 깊은 주요 국가들을 돌아보며 국제사회의 통일 지지를 이끌어내는 다양한 캠페인도 추가한 형태의 연수 프로그램을 기획·추진해 갈 계획이다.
▲ 11월 26일 바나힐 국립공원을 방문한 연수단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