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조강현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우리 힘으로 '분단장애' 극복해야 당당한 주체적 삶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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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현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우리 힘으로 '분단장애' 극복해야 당당한 주체적 삶 가능"

코리안 드리머
기사입력 2018.10.2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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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jpg▲ 조강현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충북본부 상임대표 / (사)사회정의실현시민연합 충북도회 회장
 
“북한을 100여 차례 다녀왔다면 믿으시겠어요?”- 조강현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이하 통일천사) 충북본부 상임대표는 이와 같은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사실상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방북 경험을 통해 직접 목격하고 느낀 북한과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조 대표는 지난 1988년부터 1996년까지 8년간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마주하고 있는 중국 단둥시에서 백화점을 운영했었다. 그동안 그는 중국 인부들과 함께 평양에 수도 없이 드나들었지만 특별이 제지 당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주민들에게 생활물자를 공급해 주는 중국측 사업임으로 북한당국으로서도 애써 단속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민간교류 차원에서 했던 일이니 북한측이 막을 이유가 없었고, 또 제가 간단한 말을 중국어로 할 수 있었으니 한동안은 저를 중국 사람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물론 2년, 3년 지나다 보니 제가 한국인인 것을 눈치채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제서야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었죠. 한국인과 거래한 게 들통나면 본인들도 처벌을 당할 테니, 모른 척 하고 눈감을 수밖에요.”
 
조 대표 말에 따르면, 90년대 중반까지는 지금처럼 국경 경비가 삼엄하지 않아 북중 국경지대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들도 더러 북한에 오갈 수 있었다고 한다. 북한은 김일성 사망(1994년) 직전부터 차츰 기근 현상이 눈에 띠게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당시 조 대표도 북한을 드나들면서 배고픔에 허덕이던 주민들의 모습과 수많은 아사자 등, 참혹한 현실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 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주민생활이 그때보다는 나아졌다고 하나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 “북한이 외치는 통일은 여전히 먹고 살기 위한 생계형입니다.”  

인터뷰·글 허경은


“북한이 외치는 통일은 자유 아닌 생계형”

“김일성 사망 전부터 이미 북한주민들의 굶주림이 시작됐습니다. 하루하루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제 눈으로도 수도 없이 보았죠. 지금도 기억나는 모습 하나가 있습니다. 동네 느티나무 그늘 아래 몇몇 노인들이 모여 앉아 있는데, 그들의 목적은 지나가는 중국인 등 외국인들이 건네주는 간식거리를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하루에 옥수수 100g씩 배급을 받았는데, 그 얼마 안 되는 옥수수랑 거리에서 동냥 받은 간식거리를 모아 손주들 먹여 살리기에 바쁜 거였죠. 본인들은 굶은 채 물만 마시고 버티다가, 결국에는 죽어나가는 일이 흔했던 시기였습니다.”

조 대표는 이처럼 직접 목격했던 북한의 80~90년대 모습을 설명하며 지금의 한반도 정세에 대해 우려했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고난의 행군 시절보다는 나아졌다고 하나, 그럼에도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하고 대북제재 등으로 인해 북한 경제가 전반적으로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 열망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죠. 한반도 통일을 독일 통일과 비교하는 말을 가끔 듣는데, 독일은 자유를 위해 통일을 한 것입니다. 북한이 원하는 통일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한 생계형 통일인 것과는 달리 동서독이 추구한 통일은 모두 자유의 가치와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통일이었습니다."

“북핵 폐기 장기화에 대응할 단계적 실행 계획 마련 시급”

조 대표는 한때 북한에 생활물자를 대고 여러 차례 민간지원도 했던 경험이 있어 여전히 북한 주민에 대한 연민이 강하게 남아 있다면서도 지금 북한의 대남 태도 변화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올 한 해 북한에 많은 변화들이 있었고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앞으로의 남북관계에 대해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북한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은 지금 겉으로 드러난 변화가 한마디로 ‘쇼’에 불과하다는 걸 알 거라 생각합니다. 미디어는 사실을 과장해서 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의 미디어들도 자기들이 조금 보고 느낀 것의 가치를 확대 해석하여 퍼뜨립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올해 시작된 변화들은 북핵 문제로 촉발됐는데, 각자가 단언했던 핵 폐기는 요즘 한마디도 안 나옵니다.”

북핵의 폐기 절차가 쉽게 진행되지 않을 거라고 전망한 조 대표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명확한 계획을 내 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가 명확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1대 김일성은 물론 2대 김정일도 핵 폐기를 선물성으로 제시했었고, 이제 3대 김정은도 똑같이 선물로 제시하며 국가적 위기와 고립된 침체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2011년)가 난 지도 벌써 7년여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접근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고 방사능 누수도 일어나고 있죠. 그 기술 좋고 발전했다는 나라도 수습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는 일본처럼 단순한 누수의 문제가 아니라 핵 덩어리를 안고 있는 상태입니다. 북한에서 핵 실험한 곳은 향후 몇 년간은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혹여 북핵 폐기를 합의한다 해도 10~20년은 걸려야 한다는 얘기죠. 그러나 쉽지 않은 문제라고 손 놓고 있으면 그만큼 시간은 더 오래 걸릴 것입니다. 시급히 합의를 끌어내어 5년 내 계획, 10년 내 계획, 그렇게 하여 20년 내 완전 폐기 등과 같은 장기적이지만 단계적인 실행 계획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는 얘기죠.”   

0003-2.jpg▲ 2016년 7월 28일 충북 청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충북본부 창립대회'에서 조강현 상임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간교류는 인내심 갖고 다시 추진해야"

조 대표는 이처럼 북핵의 완전 폐기까지 거쳐야 할 절차가 대단히 어렵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조급해하지 말고 멀리 보자”며 설령 북한에 속더라도 북한 주민 돕기는 계속하자고 호소했다. 정부 주도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우리 시민사회가 앞장서는 지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부 차원의 남북교류가 계속 확대되고 대북 지원이 논의될 경우 점점 더 큰 돈이 요구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간 대규모 교류가 앞서게 되면 북한측으로서는 소규모 민간지원에 대해서는 가볍게 여기고 받아들일 필요성도 못 느끼게 되는 거죠. 그리고 지금처럼 대북제재가 있는 상황에서 정부간 교류는 국제사회의 거부반응도 불러오게 됩니다. 이런 점을 모두 고려해볼 때 정부측에서 어느 정도 완급 조절을 할 필요가 있는데 그 점이 아쉽습니다.”

과거에 많은 시민단체들이 했었던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에 대해서도 국민적 찬반 논란은 여전히 존재한다. 조 대표는 대북 민간지원 사업을 해 보았던 입장에서 한국 시민단체들의 문제점도 일부 지적했다. 요약하면, "북한 주민의 생계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사진 찍기’는 그만두라"는 얘기다.

“물론 제대로 지원이 됐는지 증거를 남기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꼭 플랜카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시각적 효과를 노리려 하니 북한에서 막는 겁니다. 제가 백 번을 차량을 끌고 드나들어도 제지 한번 당하지 않았습니다. 순수하게 주고 나오면 그것으로 끝이고 어디에 생색내거나 매스컴에 떠들어대지도 않았으니까요. 물론 지급된 물품이 당국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누군가가 중간에서 떼 먹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100% 다 떼이진 않고 일부는 주민들에게 들어갑니다. 그들의 생계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때론 좀 속더라도, 모르는 척 눈감기도 하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돕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북한의 장애인 문제 심각… 지금부터 대비 필요”

조 대표는 전쟁상이국가유공자, 관광레저 부분 ‘대한민국 공로대상’ 등 7개의 훈포장을 국가로부터 수여받았고, 현재 보훈단체들의 연합인 국가유공자회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싱가폴·말레이시아·태국·중국 등에서 관광·국제 레저개발 컨설터로서의 활동도 25년째 이어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코트라·중소기업청·무역협회·서울시의 전문위원·교수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으며, 코리아레저컨설팅 대표로서 유럽 등의 기술자들을 초청, 특수 용역 등을 수행하는 도청·감청사들의 중앙회장도 맡고 있다. 조 대표의 활동영역은 이처럼 넓고 다양하지만, 각 분야 단체들의 고문 역할 중에서도 그가 가장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지속해 온 사업은 ‘장애인 합동결혼식’(주최·주관 한국교통장애인충청북도협회, 협력 통일천사)이다.

03.jpg▲ 지난 7월 28일 열린 '제17회 장애인 합동 결혼식'에서 주례를 한 조강현 대표와 예비 부부 및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04.jpg▲ 조강현 대표가 교통안전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충북 지역에만 장애인이 7만여 명에 달합니다. 선천적 장애는 2만여 명, 교통·안전 사고 등 후천적 장애가 5만이 넘습니다. 충청북도 안에만도 이 정도인데, 하물며 북한 전역에는 얼마나 많은 장애 인구가 있을까요? 제가 직접 본 사고·질병 상해자가 셀 수도 없이 많은데, 한국처럼 치료받기가 쉬운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북한 당국 조차 장애인에 대한 집계는 물론 복지나 지원은 전혀 할 수 없습니다. 간혹 선전용으로 지도자가 한번 만나 악수 해주며 찍은 사진이 어딘가에 걸려 있을 뿐이죠. 통일 후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장애인 복지 문제는 우리 상상 이상으로 큰 과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장애인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안전사고에도 조심하며, 우리 생활주변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가는 것이 모두 통일을 준비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교통 등 국민안전 교육을 실시하며 올해로 17회를 맞은 장애인합동결혼식은 충북 내 거주하는 장애인들 중 어려운 사유로 인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를 매년 10여 쌍을 선정, 합동 결혼식을 지원하는 행사이다. 

"충북 도의 사업 지원금을 받고, 저 또한 직접 후원금을 모아 이들의 예식 및 신혼여행 비용 전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청와대로부터 이와 관련하여 감사 서신을 받기도 하였는데, 이에 힘입어 내년에는 어려운 환경의 탈북민들도 합동결혼식에 참여시키고자 합니다. 이런 일들 또한 통일 운동으로써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일 운동은 꼭 ‘통일’만 외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장애로 고생하고 소외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챙기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그의 활동 내용은 우리에게 보다 더 큰 질문을 제기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 전체가 지니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장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분단’이라고 할 수 있다. 73년동안 이어져온, 엄혹한 후천적 '분단장애'를 극복할 때 비로소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당당한 주체적 삶을 자랑스럽게 영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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