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갈라진 땅’에 가까이 오고 있는‘역사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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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땅’에 가까이 오고 있는‘역사의 봄’

2019 삼일운동 100주년!
기사입력 2018.03.0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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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16 (1) 조규석.jpg▲ 조규석 주필
‘88 서울올림픽’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구호와 함께 ‘화합과 전진’을 대회이념으로 내세웠었다. 서울 올림픽의 이념과 그 해설문은 1984년 7월 22일 로스안제리스에서 열린 제88차 IOC 총회에서 공식 발표됨으로써 소중한 사료(史料)로 남게 되었다. 

“올림픽의 이상인 평화세계를 이룩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적 의지이다. 이에 우리는 ‘화합과 전진’을 서울올림픽대회의 기본 이념으로 하고, 올림픽 헌장을 충실히 준수함으로써 범세계적 화합을 이루며 인류의 오랜 염원인 영원한 행복과 번영을 위해 함께 전진하는 크나큰 전기로 삼고자 한다.”(후략)

이제는 역사의 갈피 속에 묻혀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화합과 전진의 해설문은 이처럼 세계를 향해 서울올림픽의 개최의의와 한국인의 의지를 압축적으로 천명한 일종의 선언문이었다. 실제로 서울 올림픽은 그 ‘선언문’이 천명한 대로 올림픽 정신을 충실히 구현한 대회로 평가됐다. 무엇보다도 참가국 수에서 완벽한 대회였다. 앞서 열린 1980년의 모스크바 대회와 84년의 LA 대회가, 모두 첨예한 냉전 상태에서 반쪽 대회로 치러진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성공 이었다.
 
냉전종식을 예보했던 1988 서울올림픽 

우리가 지금도 놀라움으로 상기해야 할 것은,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이후 동서 냉전시대가 실로 극적으로 마감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그 2년 후인 1991년에 드디어 공산주의 종주국 소비에트체제가 붕괴됐다. 서울올림픽이 내세운 화합과 전진의 깃발은 냉전종식에 대한 정확한 예보였던 셈이다.

그 때로부터 한 세대의 시간이 경과해서 '하나된 열정'을 슬로건으로 개최된 평창올림픽 역시 88서울올림픽과 다름없이 세계인에게 전한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것은 세계평화를 위한 우리의 통일열망이다. 물론 ‘한반도기(旗) 개회식 입장’의 옳고 그름, ‘남북 공동팀 구성’의 타당성 여부 등에 대해 정치사회적으로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동의해야 할 무형의 소득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북한 사회의 민낯을 상징하는 하나의 정경을 신문에서 읽었다. 북한 응원단 200여명은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가 관중의 보온과 응원을 위해 핫팩, 무릎 담요, 미니 성화봉 조명 등을 넣어 제공한 백색 천가방을 개회식이 끝난 직후 그대로 자리에 놔둔 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원 코리아’ 시도해 본 2018 평창올림픽 

한국 물건은 어느 것 하나도 가지고 오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이었을까. '공화국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들 나름의 결정에 따른 행동이었을까. 어느 쪽이건 안타깝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북한 선수대표단·예술단·응원단원은 모두 뽑혀온 사람들이다. 그들 북측 '엘리트들'은 개폐회식을 참관하면서 대한민국의 감탄할만한 첨단과학기술 수준은 물론 자유의 힘과 풍요의 실상을 놀라움과 부러움으로 실감했을 것이다.

우리 쪽은 어떠했나. 그 선발된 북쪽 사람들의 획일적인 겉치레 외양, 일사불란한 행보를 지켜보면서 그들을 옥죄는 부자유를 연민했고 우리의 삶에 대한 자부심을 공유했다. 더욱 중요한 소득은, 연인원 수십억 명의 세계인들이 20세기 후반의 서울올림픽 때보다도 훨씬 더 다양하고 다채로워진 21세기 초반의 한국사회를 각종 미디어를 통해 확인했을 것이고 국제사회는 이를 통해 ‘원 코리아’ 실현의 당위성·가능성에 대해 넓고 깊게 공감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모든 소득은 추상적이고 미결(未決)상태다. 더구나 ‘평창폐막’과 함께 자연으로서의 산야(山野)는 봄이지만 '역사가 갈라놓은 땅' 한쪽의 주민 삶은 여전히 혹한의 겨울이다. 그 혹한이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다. 그래서 2월의 잔치를 끝내고 맞은 이 3월에 새삼 누구나 알고 있는 시제(詩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조금 바꿔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갈라진 땅'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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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恨’-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인 이상화가 망국의 한(恨)을 시로 지어 세상에 내놓은 때는 1926년이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지 17년째, 3∙1운동으로부터는 8년째 되는 해였다. ‘나라로서의 권리’(국권), ‘나라 주인으로서의 권리'(주권), ‘시민∙공민(公民)으로서의 권리’(민권)는 물론이고 ‘개인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인권)도 사실상 거 의 다 잃은 시대였다. 3∙1운동은 민족의 힘과 뜻을 하나로 모아 그 잃어버린 권리들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었다. 20세기 초반에 처음으로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일어난 ‘민권운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3.1 운동은 결코 편협한 민족주의의 발로가 아니었다.  3·1독립 선언서가 천명한 기본 사상은 인류의 보편적 이상의 실현이었다. 다만 문제는 3∙1운동으로 쟁취하려 했던 독립에 이르지 못함으로써 그 이후의 우리 현대사가 수난과 격동으로 점철됐다는 사실이다.
 
지난겨울 평창올림픽을 통해 세계에 알리고자 한 우리의 평화·통일 염원도 사실상 99년 전 봄에 서울 탑골공원에서부터 발화(發火)한 ‘3·1정신’에서 연유했다고 하면 해석의 과장인가. 아니다. 독립선언서의 총체적 함의(含意)는, 조선의 독립이 인류 사회에 새로운 빛의 시대를 기약하는 문명사적 전환의 결정적 계기라고 설파한 것으로 요약된다. 선언문은 조선의 독립운동이 ‘인류 공존동생권(共存同生權)의 발동’임을 들어 그 정당성을 세계를 향해 강조했다. 그렇다. 한반도 통일도 궁극적으로는 공생공영(共生共榮)의 평화세계를 위한 필수적 선결요건이다. 3·1 독립선언서 속 ‘조선독립’을 분단시대의 마감을 
위한 ‘한반도 통일’로 바꿔 넣으면 그대로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시대적 명제가 되는 이유이다.
 
‘통일선언’ 해야 할 3·1운동 1백주년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대다. 자기 주도로 변혁하지 못하면 발전의 대열에서 필연적으로 낙오하게 된다. 우리에게 미래를 위한 절대적 변혁은 한반도 통일이다. 3·1운동 1백주년을 한 해 앞둔 올 3월부터 통일을 위해 우리가 서둘러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답은 자명(自明)하다.

지난날의 독립선언서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제 민족전체의 이름으로 ‘통일선언’을 하고 국제사회에 ‘홍익인간’의 나라-바로 ‘코리안 드림’의 미래 비전을 광범위하게 전해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통일의 날은 의외로 빨리 다가올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 모두에게 긴요한 일은, 민족사의 미래에 대한 하나의 확고한 믿음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제 ‘갈라진 땅’에 ‘역사의 봄’이 가까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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