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조재형 작사가] “벼랑 끝에 선 한반도, 이제 날개 펴고 비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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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작사가] “벼랑 끝에 선 한반도, 이제 날개 펴고 비상해야 한다"

코리안 드리머
기사입력 2017.10.1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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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jpg▲ 조재형 캘리포니아주립대 AMP 한국교육원장 /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 작사가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에서 만섭(송강호)은 광주까지 다녀오는데 왕복 10만원을 준다는 한 독일기자의 말에 ‘돈 워리!’를 외치며 손님을 태우고 광주로 향한다. 그리고 "손님이 가자면 택시는 어디든지 간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물론 영화 내용이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가령 서울 어느 거리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평양까지 갑시다”를 외친다면, 택시운전사는 그 길로 경찰서로 향할지도 모를 테니. 그런데 이런 노래 가사가 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오 만원 / 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 가는 곳 없는데 /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은 왜 못 가 / 우리 민족 우리의 땅 평양만 왜 못 가…” 
노래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작사가가 바로 조재형 원장이다. 그는 “90년대 초 처음 작사를 할 때만 해도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2만원’이라 적었었다”고 회상하며 언젠가 광화문 도로원표(道路元標)에 평양까지의 거리가 193km로 적힌 걸 보고 당시 물가대로 산출해 본 것이라 말했다.
 
노래를 부른 가수 신형원은 얼마 전 'EBS 스페이스 공감'(2017년 5월 18일 방송분)에 출연해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12만원'이라고 가사를 또 고쳐 불렀다. 노래가 나온 지 20여년이 훌쩍 넘었으니 한국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고쳐부를만도 하지만, 그래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따블, 따따블’을 더 외친대도 여전히 평양은 택시로는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글 허경은


“국민적 통일 염원이 강할 때 노래도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조재형 원장은 언젠가 우연히 통일가요 작사를 의뢰 받아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작사했고 이를 계기로 계속해서 ‘통일 아리랑’, ‘청호동 할아버지’, ‘통일이 그리워’ 등의 통일가요를 작사했다. 
 
“누군가는 설움에 북받치고 분노할 때 ‘통일 아리랑’을 부릅니다. ‘청호동 할아버지’는 반 백년을 북녘 고향을 그리워하다 아흔이 되어버린 어느 노인이 이제는 죽어 혼이 되어서라도 바람 결에 북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내용입니다. ‘통일이 그리워’는 KBS’열린음악회’에서도 불리곤 했는데, 언제쯤이 되어야 배낭을 메고 서울에서 제주에 가는 것처럼 자유롭게 북으로 휴가를 가볼까 상상해보는 내용입니다. 물론 작사도 중요하지만 작곡도 매우 중요하죠. 그때 같이 작업했던 윤민석, 조민하 작곡가들이 있었기에 좋은 노래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조 원장은 95년에 ‘한국노랫말대상’을 수상했다. 음악 전공자가 아닌 그에게서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노랫말들이 나온 것은, 누구보다 통일을 염원하는 그의 마음과 진정성이 절실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측면을 강조하기도 했다. “노래는 불을 더 크게 키우는 불쏘시개(연료)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라며 노래보다 더 중요한 것이 통일 분위기를 촉발하는 어떤 사건, 바로 동기부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래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언젠가 사회적으로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을 때 노래로 불을 더 지펴보기 위해 만들게 된 곡입니다. 어떤 동기부여도 없이 노래만 만들면 불리지 않습니다. 결국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통일 분위기가 조성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노래는 힘을 받아 그 염원을 더 키우는 연료가 될 것입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

조 원장은 법학, 언론정보학, 경영학 전공으로 학·석·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주립대 최고경영자과정(AMP) 한국교육원장을 맡고 있다.

011.jpg▲ 조재형(왼쪽) 캘리포니아주립대 AMP 한국교육원장이 지난 2015년 본 과정 수료식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 본교에서 방문한 티모시 앵글(Timothy R. Angle) 국제교육원 학장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그는 ‘바른 리더’는 사회참여와 나눔의 기쁨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AMP과정의 졸업과제도 재능기부와 봉사 참여에 맞춰 지도하고 있다.

지난 6월 24일에는 재학생들이 졸업과제로 기획한 '연평응원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평화통일을 기원하고 연평 주민과 국군장병들을 응원하기 위해 기획한 것인데 오는 10월 27일에는 같은 내용으로 백령도에서도 콘서트를 개최한다.

005.jpg▲ 6월 24일 연평도에서 개최된 '연평응원콘서트'에서 조재형 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개인적인 철학이라면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개인적으로 누리는 재정적인 여유도 포함되는데, 스스로를 건사하는 것을 넘어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을 하며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실리를 따져야 하는 ‘경영자’로서는 어쩌면 위험한 생각일 수 있지만 사회를 이끄는 ‘리더’라면 그런 생각과 인류애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이들은 돈을 아무리 가져도 행복하지 않다고 하죠. 저는 그런 리더들에게 돈을 쓰며 행복을 느껴보라고 말합니다. 가끔 어떤 수강생들은 졸업과제 한번 해 본 것이 계기가 되어 알게 모르게 봉사를 지속해가더군요. 사회에 기여하는 리더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겐 반전과 역전의 힘이 있다”

경영자이자 학문 연구자인 조 원장의 과거 이력은 전공과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어 보인다. 그는 지난 날 공장 근로자, 택시 운전사, 작사가, 사진 촬영기사, 다큐멘터리 촬영감독 등 수 차례 직업을 바꿔가며 살아왔다. 그는 이 같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끓임 없이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택시 노동운동을 해 보기도 하고, 대학로 인근에 사진 스튜디오를 오픈해 무작정 카메라부터 사들인 다음 배우면서 일을 시작하기도 했죠. 그러다 IMF도 겪었고, 방송제작을 해보겠다며 다룰 줄도 모르는 고가의 영상장비들을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형편이 넉넉치 않고 부양가족도 거느리고 있었기에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할 겨를도 없이 닥치는 대로 새로운 일을 찾아가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무작정 시작하고 열정을 쏟으면 그만큼의 결과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008.jpg▲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이던 조재형 원장의 모습. 
 
아마 택시를 몰아봤기에 노랫말에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2만원’이란 발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조 원장이 수상한 ‘한국노랫말대상’(1995), '대한민국영상대전 감독상'(2002), 'YWCA 좋은TV프로그램상 특별상'(2003) 등은 그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타고난 감각을 가늠하게 해 준다.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일은 다큐멘터리 방송제작을 위해 장애인들과 함께 킬리만자로, 록키산맥 등을 등반했던 일입니다." 

예사로운 등반이 아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미친 짓'이라고 말렸던 장애인들과의 험난한 등반을 끝내 이끌어냈다. 킬리만자로 등반은 양 손이 없는 스키선수 김홍빈, 1급 시각장애인 김소영, 하반신이 없는 뉴질랜드인 토니 크리스챤슨 등이 서로의 팔과 눈과 다리가 되어 정상에 올랐다(2002년, KBS2TV '도전지구탐험대' 방영). 로키산맥 등반에는 두 발이 없고 손가락이 2개인 선천적 장애 아동이자 수영선수인 김세진, 휠체어 농구 국가대표 선수 한사현, 가수 이안 등과 함께 했다(2005년, KBS2TV '도전지구탐험대' 방영).

007.jpg▲ 조재형 원장이 2005년 KBS2TV '도전지구탐험대' 촬영으로 미국 방문 당시 콜로라도주 로키산맥을 등정하고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직접 카메라에 담았다. (하단 사진, 왼쪽부터) 가수 이안, 휠체어 농구 국가대표 선수 한사현, 의족을 찬 장애아동(당시 9세) 김세진.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물론 그 이전인 90년대 말에도 KBS ‘병원24시’의 연출을 맡기도 했습니다.”

주로 휴먼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던 조 원장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생사의 갈림길에서 절망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을 뿐 아니라 방송을 통해 모금된 비용을 전하기도 했다.   

“벼랑 끝은 절망 아닌 희망 향한 도전의 지점”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절벽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이 그러함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남북한 문제를 비롯해서 청년, 취업, 결혼, 가정, 출산, 폭력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존재하죠.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책이 한때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우리는 현실을 인식하는데서 그치지 말고 더 도약해야 합니다. 절벽에 섰을 때 주저앉지 말고 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죠. 어쩌면 그 절벽은 ‘가장 날기 좋은 벼랑 끝’일 수 있습니다. 새들은 절벽에서 뛰어내릴 때 비로소 자신에게 날개가 있음을 깨닫고 펼치게 됩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뛰어내리면 추락하지만, 내게 거대한 날개가 있다고 믿고 뛰어내리면 비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벼랑 끝으로 몰리더라도 높이, 바람, 저항, 날개 길이, 몸무게 등을 다 계산하고 고민하면서 걸어가야죠.”
 
개인의 삶에는 조 원장의 말대로 날개를 피고 날기 위해서는 벼랑 끝까지 갈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반도의 안보 정황이 그렇다. 벼랑 끝에서 우리가 지니고 있을 거대한 날개를 펴고 평화를 향해 과감하게 비상을 시도해야 하는 때가 아닐까. 위대한 목표는 위험 없이 달성될 수 없으므로... 조원장이 들려 주는 그의 지난 삶이 이를 일깨우는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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