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이요민 모바일랩]“기회가 균등한 사회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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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민 모바일랩]“기회가 균등한 사회 되었으면...”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기사입력 2017.08.0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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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jpg▲ 이요민 모바일랩 대표
 
2007년 겨울 서해안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일이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현장에서 어민들에게 분명히 말했다 “네, 어떻게든 살리겠습니다.” 그러나 공무원의 브리핑 내용은 대통령의 다짐과는 전혀 달랐다. 기상 악화, 인프라 부족 등을 나열할 뿐 뾰족한 복구 대책을 내 놓지 못했다. 노 대통령이 답답한 듯 물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하면 되냐구요.”

그 때로부터 7년 후 남해안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나라가 온통 비탄에 젖었던 그 때 이요민 모바일랩 대표는 서해안 기름 유출사고 당시 노 대통령의 그 영상이 떠올랐다고 한다. '어떻게든 방법을 구하라'는 말이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말처럼 귓가에 맴돌았고,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로서 세월호 작업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저희 회사가 보유한 기술은 훼손된 PC나 휴대폰 등을 분석해 저장된 정보들을 복원해 내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고 발생 당시 국내에서 이 기술을 갖고 있는 회사는 저희를 포함해 단 두 곳뿐이었죠. 정확한 사고 발생 경위를 파악하고 복구 과정을 돕기 위해서는 이 기술이 꼭 필요했습니다.”

주로 군·검·경 등에 납품해 적법 절차에 의해 증거를 수집해내는 이 수사기법은, 민간시장에서 비즈니스화 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다. 으레 사업가라면 이익을 따져 결정했을 사안을, 이 대표는 손해를 감수하고 자신의 기술을 무료로 제공했다. 차량에 항상 장비를 싣고 다니다 선체에서 휴대폰이 나왔다는 연락만 오면 현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현재까지 확보된 세월호 희생자들의 휴대폰 130여개 중 복원된 폰은 10개에 달한다.

인터뷰 주인호 / 글·사진 허경은


“선입견을 버리면 새로운 기회가 생겨”

이요민 대표는 세월호 휴대폰 복구 작업에 있어서 자신이 쓴 디지털 포렌식 방식은 기존의 접근법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라고 자신했다.

“보안상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국내외 논문을 다 찾아봤는데도 저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 사례는 찾지 못했습니다. 훼손되거나 삭제된 데이터들을 복원하는 방법은 많지만 결과적으로 얼마나 효과적인가가 중요할 것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인양되기 전까지 발견된 휴대폰이 약100여개 였습니다. 초반 70여개는 성공하였고 후반에 발견된 30여개의 휴대폰 복원 작업에 애를 먹고 있을 때, 학문적으로 나와있는 다양한 방법을 써봐도 복원이 안되어 오래 고민하다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방법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030.jpg▲ 이요민(오른쪽) 대표가 세월호에서 발견된 희생자의 휴대폰을 복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이요민)
 
이 대표는 미국에서 췌장암 진단키트를 발명해 화제가 된 십대 소년 ‘잭 안드라카’의 사례도 언급했다. 잭은 췌장암 초기증상을 5분만에 35원의 비용으로 100%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해 낸 주인공이다. 그는 친구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사망한 것에 충격을 받아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진단율조차 저조했던 기존 진단 방식을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연구해 획기적인 신기술 창조해 냈다. 잭과 이 대표의 사례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공통점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규칙, 즉 어느 고착화 된 프레임을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했다는 점이다.

“상식에 맞게, 진실을 찾아”

그는 세월호 작업을 하며 그 안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들을 제일 처음 분석하게 되면서 어느 언론매체보다도 먼저 참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사업가로서 회사 일을 뒷전에 밀어두고 세월호에 오랜 기간 매어있다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마저 생겨 그만 둘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저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고마운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제 회사 직원들에겐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작업을 하는 동안 직원의 수가 절반이나 떨어져나갔으니, 정작 제 식구들을 챙기지 못한 것이죠. 그런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고뇌에 빠졌을 때 다짐한 게 있습니다. 조금 더 상식에 맞는, 조금 더 진실에 가까운 일을 선택하자...”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줄곧 챙기지 못한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리더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고 했다. 이 대표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보편적 가치로 믿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자신도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런 기풍이 충만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주변에는 저보다 더 착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월호 작업 중 알게 된 오승래라는 친구도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직장도 그만두고 미수습 유해발굴 작업에 뛰어들었는데, 아주 단순하게도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이니까’라고 참여동기를 말하더군요.”

사회 변화, 언론의 역할 중요

그는 세월호 작업으로 어려움을 느낄 때 큰 위로가 된 사람들을 소개했다. 안민석 국회의원, SBS funE의 강경윤 연예부기자, SBS ‘그것이알고싶다’의 배정훈 PD다. 안 의원은 그가 하는 일이 더 힘을 받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도와주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도 했다. 또 회사 운영이 잘 되지 않아 고민에 빠졌을 때 강 기자, 배 PD 등이 “결국 지금 하는 작업이 회사의 기술로 하는 작업이다. 세월호가 인양되었으니 작업의 성과는 더욱 속력을 받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당신의 사업도 힘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해 줘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029.jpg▲ 인양된 세월호의 선체 모습 (사진 제공=이요민)
 
이 대표는 사업 특성상 많은 언론인들을 만나 왔지만 “그러나 대체로 언론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도 말했다.

“언론은 여론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여론의 힘을 가장 크게 받으며 성장한 JTBC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네요. 특히 저는 세월호와 관련한 데이터와 영상자료들을 가장 먼저 접했기 때문에 언론사에 가장 먼저 제보를 하고 자료들을 제공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려되는 점은, 점차 언론들이 ‘단독’, ‘최초’ 등에 빠져서 마치 일반 회사의 영업사원들처럼 성과주의에 매달리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게 보도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이기도 하지만 언론의 가치와 본질이 훼손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언론의 올바른 역할에 대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요즘, 비단 세월호 문제에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국가의 지향점을 정부는 물론 국민에게 제시해야 하는 것이 언론의 본질적인 책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호가 시대적 격랑을 제대로 헤쳐 가기 위해서 언론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뜻있는 일, 꾸준히 해 나가고 싶다"

스스로 정의나 대의라 생각하는 일에 기꺼이 뛰어들고 큰 문제 없이 거침없는 행보를 걸어온 듯한 이 대표는 뜻밖의 가정사를 털어놓기도 했다.

6살이던 해에 부모님이 이혼을 해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했고, 혹여 작은 실수에도 부모 없이 자라 저렇다는 말을 들을까 봐 줄곧 반장을 놓치지 않을 만큼 학업에 매진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남의 집 살이를 하는 처지에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이란 생각에 스무살이 되자마자 돈을 벌고자 포장마차, 중고차 매매, 보험, 휴대폰 판매, 온라인 쇼핑몰 빌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다시 돌이켜봐도 정말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학연, 지연 등의 인맥은 커녕 가족이라는 울타리조차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더욱 다짐하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런 부모가 되지 말자. 어른들의 가벼운 판단 하나로 그 피해가 다른 이들이게 가게 하지 말자.”

이 대표는 기업가로 성공해 훗날 고아원을 설립하고 싶다는 꿈을 전했다. 그가 설계하는 고아원은 단순히 먹고 재워주는 곳이 아니라 걱정없이 공부하고 자립할 때까지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갖춘 고아원이다. 유기동물 보호소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그의 꿈의 방향이 주로 외면당한 아이와 동물들에게 향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해서 사회를 원망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룬 것들을 다음 세대들에게 나누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겪은 것과 같은 환경에 놓이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회에 대한 바램을 말했다.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지만, 기회 만큼은 균등하게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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