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격동의 시대, 불우한 삶에도 사랑과 희망을 그렸던 '민족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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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불우한 삶에도 사랑과 희망을 그렸던 '민족의 화가

“이중섭, 100년의 신화” 전시회 (6월 2일~10월 3일)
기사입력 2016.09.0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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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3).jpg▲ <이중섭, 100년의 신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0031.jpg▲ 이중섭의 대표작 <황 소>(1954년 경)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작품 200여 점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의 탄생 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고 있는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회다. 지난 6월 2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막된 이번 전시회는 오는 10월 3일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많은 한국인들은 이중섭의 대표작을 꼽으라 하면 <황 소>를 떠올린다. 강렬한 붓 터치로 소의 근육과 역동적인 몸짓을 표현한 이 작품은 지난 2010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 6천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중섭은 분청사기, 고분 벽화 등에서 영향을 받아 그만의 독특한 미술양식으로 창작한 천재화가였다. 
그가 ‘민족의 화가’로 불리기도 하는 이유는 식민, 해방, 전쟁, 피란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통과하며 시대의 질곡, 가난, 가족과의 이별 등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쉬지 않고 그림 속에 담았기 때문이다.

0032.jpg▲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 전시돼 있는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생전 모습
평안남도 평원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이중섭의 생애 후반은 참으로 불우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화가 활동을 하며 만난 후배 야마모토 마사코와 한국(한경남도 원산)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았다.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가족과 함께 부산, 제주도 등을 전전하며 고통스러운 피난살이를 했다.

전쟁 중이던 1952년에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 보낸 후 편지를 주고 받으며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행복했던 지난 시간들을 그림에 담아 주고 받았지만 피폐한 삶 속에서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적 질환을 앓다가 41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이중섭의 작품 속에는 유독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바닷가의 아이들>(1952-53), <길 떠나는 가족>(1954), <돌아오지 않는 강>(1956) 등의 작품을 통해서는 그의 참담한 생활현실과 애틋한 가족애를 엿볼 수 있다.

전시회 주최측은 전세계에 흩어져있던 그의 작품을 1년여에 걸쳐 모았다고 한다. 관람객은 전시관 1,2층에 마련된 4개의 관에서 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매일 2회 진행되는 도슨트의 해설과 함께 하면 작품의 예술적 의미뿐 아니라 이중섭의 삶, 우리의 현대사를 새롭게 되돌아 볼 수도 있다. 배우 이정재의 목소리 녹음으로 제작된 오디오 가이드도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민족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을 맞아 모처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게 되는 9월에는 전시회장을 찾아 삶과 예술, 나아가 가족의 의미를 성찰해보는 계기를 가져보면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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