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경제포커스] 해가 지는 대영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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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해가 지는 대영제국

칼럼
기사입력 2016.07.0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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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호.jpg▲ 주인호 편집국장
자본주의 정신의 뿌리 영국이 혼돈에 빠졌다. 브렉시트는 마치 1930년 대공황 때 독일 국민이 오만한 판단으로 히틀러를 선택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타락이며 물질 앞에 무릎 꿇은 인간본성의 굴욕적 표출이다. 세계경제 질서를 함께 일으켜 세우자는 결의도 자본에 대한 이기주의 앞에서는 무색했다.  

EU탈퇴는 영국 국민이 1946년에 가장 먼저 제기해 창설한 EU의 이니셔티브를 스스로 버린 꼴이고 결국 신고립주의 함정에 빠져들었다는 뜻이다. 무엇이 영국 국민들에게 이처럼 '오만한 오판'(誤判)을 하도록 만들었을까? 

영국브렉시트.jpg
 
세대간의 갈등 조정력 상실
 
언론보도를 요약해 보면 브렉시트의 배경은 EU가입국가 가운데 2020년까지 2번째로 높은 예산 분담금(566억 파운드)에 대한 부담감과 난민 유입에 따른 전체 취업자의 16.5%를 차지하는 이민자 계층의 불안감 그리고 독일 주도의 EU 운영에 대한 불만감의 표출 등으로 요약된다.

물론 EU 경제권보다 영향력이 클 미국과 영국을 중심한 대서양 경제권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해석도 있긴 하다. 그러나 세계 금융 시장에서 2,400조 이상의 자본을 증발시킨 브렉시트는 영국이 세대, 계층 갈등 그리고 난민의 대거 유입 등 눈 앞의 현실적 과제들에 대한 조정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결국 영국이 공존 공영이라는 세계 자본주의의 새 가치를 창출하는데 소홀히 한 결과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영국의 위대한 자존심
 
영국은 위대한 국가이다. 영국이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려 온 것은 강력한 국력으로 식민지를 확장해 온 역사 때문만은 아니다.  영국은 신앙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온 나라이다. 영국은 독일과 같이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인간과 절대자 사이에 있는 교회의 중계 역할을 부정하며 개신교 국가가 되었다.

프로테스탄트의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근면성, 개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칼벵주의는 영국 청교도의 신학적 근거가 되었다. 그에 따라 도덕적 순수성을 추구하고 낭비와 사치를 배격하며 근면을 강조하는 청부(淸富)사상이 영국 국민의 행동철학으로 이어져 왔다.

그것이 바로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적 뿌리다. 여기서 영국이 종교개혁 지지 이후로 산업혁명을 이끌고 인간을 존중하는 민주주주의 체제가 꽃피워졌고 오늘날의 미국 건국이념의 토대가 되었다. 영국 국민의 자존감이 형성된 배경이 거기에 있다.
 
신 민족주의의 도전
 
디지털 기술 등 과학의 발달은 경제자유무역 시대를 촉진시켰고 세계시민사회 등장의 배경이 되었다. 이제 글로벌화 사회는 좋은 출신 배경, 학벌 등 만으로는 성공이 기약되지 않는다. 대신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며 합의를 실천으로 옮기는 소통의 힘이 개인의 가장 큰 자산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변화의 싸이클이 짧아지면서 소통의 욕구 증대만큼 국가는 제도적 장벽을 과감히 철폐하는 일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세계는 지금 종교적 갈등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갈등에 빠져있다. 글로벌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세계경제 질서의 재편을 시도했으나 그 과정에서 오히려 국가 이기주의만이 팽배해지고 있다. 그 결과 국가마다 신민족주의적 기류가 형성되고 있고 그것이 바로 국가 정체성에 대한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공영(共榮)이 세계시민경제사회 이정표 되어야
 
브렉시트2.jpg
이제는 더 이상 인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온 정신적 가치의 소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브렉시트를 선택한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국 이익을 전제로 합의하고 이익을 위해 그 합의를 파기하는 국가 이기주의로는 글로벌 경제위기는 타개되지 않는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반드시 상생(相生)의 철학이 전제되어야 한다.

함께 살아간다는 차원에서 부(富)의 개념이 소유에서 시간의 축적에서 얻을 수 있는 나눔의 자본 개념으로 확대된다면 공영(共榮)의 세계시민경제사회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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